마지막 일주일
#27
11월13일
엄마와 동생이 집에 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탁을 정리한 후 우리는 차를 함께 마셨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진숙이 편하게 보내주자. “
그 말의 뜻을 알아 다시 눈물이 터졌다.
“아직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고 혼자 화장실도 가는데
살아있는 애를 내 손으로 죽이는 것 같아.
수액 맞고 와서는 밥도 조금 먹잖아.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
울면서 정신없이 쏟아낸 말에는
내 죄책감과 슬픔,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진숙이가 얼마나 아플지보다
마지막을 결정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짓눌렸다.
“진숙이가 많이 아플 거야. 우리가 결정해줘야 해.”
동생의 말에 불쑥 화가 났다.
모든 결정이 다 후회로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까.
보내는 것도 후회로 남을 것이고
보내지 않는 것도 후회로 남을 것이다.
진숙이가 아프다는 걸 안 순간부터
매일매일의 선택들이 전부 다 후회로 남았다.
수술을 했어야 했어야 했나.
이사 오지 말았어야 했나.
더 큰 병원으로 갔어야 했나.
좀 더 자주 체크했어야 했나.
일찍 약을 먹였어야 했나.
아니, 그 약을 먹이지 않았어야 했나.
매 순간 보호자의 자격으로 진숙이의 삶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는 진숙이의 죽음을 결정해야 했다.
그 책임을 어떻게든 미루고 싶었다.
“그럼, 진숙이가 스스로 걷지 못할 때까지만
내가 보살펴 주고 싶어…“
최후의 선은 그렇게 정해졌다.
#28
동생을 바래다주러 나가니 11월 밤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조금 따뜻할 때 가지, 왜 이렇게 추울 때 떠나야 할까.
동생은 우는 나를 끌어안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제 우리의 삶에는 새로운 만남보다 예정된 이별이 더 많을 거야.
우리는 이제 보내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 “
머리가 지끈거리는 아득함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 것들을 보내야 하나.
이별하는 슬픔 같은 것에도 익숙해질 수가 있나.
그날 밤에는 이상한 꿈을 꿨다.
집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난 쫓아낼 생각도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거실에 서있었다.
나중에 해몽을 찾아보니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꿈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다.
원하지 않는 일을 결정하느라 압박감을 느낄 때 꿀 수도 있고
아끼던 것을 잃거나 공들여하던 일이 실패할 때 꿀 수도 있고
어려움이 닥칠 때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꿈이 일러준 대로
원치 않은 결정을 했고
아끼던 것을 잃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