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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남편연구소 Mar 14. 2021

부부회화: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아

제 신체의 비밀(?)중 하나는 바로 내성발톱입니다. 군대 시절 처음 생겼는데, 1년에 몇 차례 엄지발톱이 발가락을 파고들어서 상처가 납니다. 운이 좋으면 며칠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대부분은 피를 봅니다. 치료방법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아내가 처음 발톱의 상처를 봤을 때는 병원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처음으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확실히 치료는 되지만 마취주사부터 상당히 아프더군요. 어찌 보면 고통의 일시불이냐 할부냐 문제 같았습니다. 그 후로는 병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치료를 했습니다.


최근에 다시 발톱에 문제가 생겼고 이번엔 조금 오래 걸리더군요. 아내가 걱정하면서 진통소염제도 사주고 거즈도 사주면서 매일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 여보,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오면 어때? 그런 사람도 있더라.

나 : 병원에 가면 치료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근데 지금 좀 괜찮아지는 중이니 기다려 볼게.

아내 : 이번엔 좀 오래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네.

나 : 그러게.. 근데 병원에 가면 지난번이랑 같은 방법으로 치료할 거 같아.

아내 : 그렇긴 한데.. 지난번에 병원 가서 아팠다고 하니까.. 내가 병원 가라고 하기도 그렇네..


아내를 걱정시키는 것도 미안하고, 낫지 않는 발톱 때문에 짜증도 나면서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저녁 모임이 갑자기 생기면서 발톱은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아내 : 여보,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오면 어때?

나 : 그럴까? 근데..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병원은 치료를 받으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내 : 그냥 약만 받겠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나 : 그럴 수도 있는데.. 만약 의사가 '치료하시죠'라고 하면 '싫어요'라고 하기도 좀 그렇잖아.

아내 : 그렇네.. 근데.. 계속 아파 보이니까...

나 :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래?

아내 : 나라면... 음..

나 : 나는 발톱보다 당신 마음 불편한 게 더 신경 쓰이거든. 병원 가서 치료받을까, 집에서 관리를 할까?


조금 차갑게 말해서 아내가 서운해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제 마음을 설명했습니다.


여보, 내가 아픈 거 걱정해주고 관심 가져 주는 것도 고마워. 그런데.. 나는 지금 결론이 필요해. 나보고 이렇게 해, 저렇게 해..라고 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 그러면 '나라면 이렇게 할 거 같아' 정도 말해줘도 좋을 거 같아.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래?


살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해야 할 때가 있고, 상대방에게 행동을 요청할 때도 있고, 나의 생각을 제안할 때도 있습니다. 확률상 공감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마치 제삼자처럼 쿨하게 '나라면 이렇게 할 거 같아' 정도의 의견을 말할 때도 필요할 듯합니다.


공감 없는 요청이나 제안은 '내 마음을 몰라주네..'라는 섭섭함을 키우지만, 공감만 지속된다면 상대방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단계로 넘어가서 요청이나 제안도 적절하게 필요한 상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물론 타이밍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혼이 어려운 거 아닐까요.

 

Small things often.



Ps. 그래서 병원에 갔냐고요? 아니요. 집에서 조심스레 자가치료 중입니다. 병원은 무섭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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