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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일상 May 29. 2022

어쩌다 보니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 <불편한 편의점> 중에서 -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딸아이 머리를 질끈 묶어주고 집을 나선다. 아령, 밴드 그리고 물이 든 가방과 요가 매트를 어깨에 둘러매고 약속 장소를 향해 달린다. 축축한 머리와 화장기 없는 얼굴 그리고 레깅스와 쫄티를 입고 부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충동적으로 온라인 홈트를 시작하고 1주일(3번) 수업했다. 지인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모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 없다. 강사의 이름까지도. 체험 수업도 하지 않고 덜컥 시작하는 나를 지인도 강사도 무척 걱정스러워했다. 첫 수업 후 단톡방에서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기대된다며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정작 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운동만이 목적이니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 관계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다음 날, 어떤 회원의 집에서 모여 함께 운동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서울도 아닌 양평에 위치 한 개인 집에서 많은 인원이 모인다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궁금함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이른 오전, 양평 그리고 낯선 모임이라 쉽게 손을 들 수 없었다. "카톡!" 지인이 모임에 함께 가자고 했고 덜컥 약속했다. 남편에게 막내를 맡기고 친정엄마에게 둘째를 부탁한 뒤에야 지인의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먼 길을 가면서 지인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모임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고 의문의 실타래가 차차 풀려갔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한참 가다 보니 앰프 소리로 시끄러운 집 앞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이 넓은 정원을 가득 채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운동을 하고 있다. 지인과 쭈뼛쭈뼛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몇 개 동작이 끝나면 회원들끼리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낯선 이에게도 서슴없이. 갑자기 요란한 댄스 음악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소리 지르며 더욱 신나게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댄스를 배우며 시작된 모임이라더니 흥이 넘친다. 박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몸에 당황해서 헛웃음만 나왔다. 이런 분위기라면 계속 운동하기 힘들겠다는 거부감과 마음껏 소리 지르고 몸을 흔들 수 있는 쾌감이 묘하게 공존했다. 눈 부신 햇살과 폭신한 잔디밭이 어색한 나를 품어주니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둘러앉아 수박을 나누어 먹었다. 멀리서 온 새로운 식구라며 자꾸 수박을 권하니 배가 불러도 웃으며 먹게 된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고 내가 가장 어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막내라니 기분이 좋았지만, 과연 근력 운동을 위한 목적에 이 모임이 적절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으로 백숙을 먹고 커피를 마시자며 이동했다. 인적이 드문 동네에 카페가 있다는 것에 신기했는데 앞사람을 따라가자보니 카페가 아닌 집 거실에 서 있었다. 이미 주방에는 사람들이 모여 간식을 준비하고 커피를 나르고 있다. 가만히 서 있는 나는 무척 불편했는데 그들은 깔깔 웃으며 무척 편하고 가벼워 보였다. 넓은 거실에 둘러앉아 운동 이야기를 이어가며 웃음꽃을 피운다. 집에 갈 시간, 텃밭에서 재배한 각종 채소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차를 탔다.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주는 마음을 기꺼이 받는 모습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낯선 사람 틈에서 

남의 집 정원에서 운동하고

남의 집 거실에서 다과를 즐기고

남의 집 텃밭에서 상추를 따고 있었다. 


인생은 나의 뜻과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듯하다. 수많은 기회와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간다. 어떤 길이든 처음은 낯설고 불편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가끔은 대책 없이 한 걸음 나아갈 때 삶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반짝이는 사람들을 만나 내 삶까지 찬란하게 빛나게 된다. 오늘 불편한 시간 속에 쌓아간 경험치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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