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사람이요.”
뻔한 질문이라는 듯 대답이 금방 나온다. 내가 사는 동네 엄마들을 대상으로 책 쓰기 강의를 한 날이었다. 한자리에 모인 열 명의 수강생들은 ‘예비 저자’라는 말조차 쑥스러워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블로그도 운영한다면서 책을 내라는 말에는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글을 잘 써야만 책을 낼 수 있으니까, 자신은 실력이 부족해서 책을 낼 수 없다는 논리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용기 있는 사람이 책을 낸다고 생각해요. 용기 있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나의 경험, 실패의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죠.”
무엇이든 성공해내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자신감이 넘친다. 도전했지만 이루지 못했을 때,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을 때는 목소리가 작아진다. 성공을 자랑하기는 쉽지만, 실패를 드러내려면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내가 겪은 실패, 후회, 반성, 시행착오가 다 책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신경정신과에 가서 상담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불량 시공된 집을 되돌린 고생 담을 쓴 책 ‘새로 태어난 마이 홈 인테리어’, 우아한 책방 주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게 해 줄 책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처럼 말이다.
나는 먼저 겪어본 경험자이고, 살짝 돌아가고 있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는 자신감이 있어야만 실패담으로도 책을 쓸 수 있다. 등단할 만큼 검증받은 글을 쓰지 않은 나,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은 나, 한 분야에서 성공하지 않은 나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나의 첫 책은 ‘엄마인 젊은 암환우가 아이를 돌보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본 이야기’였다. 내가 쓴 글은 공모전에서 입상한 적도 없고, 나는 브런치에서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픈 게 무슨 자랑인가 싶어 글쓰기를 망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썼다. 먼저 암을 경험했고, 나를 돌보며 살아가는 과정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출판했다.
나를 ‘작가님’이라고 추켜세우는 그녀들에게 아무리 책을 써보라고 권해도 잘 통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도 책을 쓸 수 있다는 말을 도무지 믿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두 번째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첫 책을 쓰기까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솔직히 고백하면, 쓸 수 없다고 믿는 그녀들도 용기를 얻지 않을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불편해질 정도로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놀고먹어도 충분할 만큼 인세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또 책을 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긴 할까 의문이다. 그래도 또다시 책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 건,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책 쓸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응원이 필요하니까. 내가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