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선혜 Oct 30. 2022

유명한 사람이 내 책에 추천사를 썼을 때 생기는 일


책 표지보다 뒷모습을 더 오래 본다.  

추천사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이 보증해주면 아무리 처음 보는 작가라도 믿음이 생긴다. 특히 작가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추천사를 읽고 나면 사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확 기운다. 그래서일까. 첫 책 작업을 하면서 원고보다 걱정했던 게 추천사였다. 전업주부로 10년 동안 지내다 보니 실처럼 가느다란 인맥은 끊어져 버렸다. 나를 팍팍 지원해줄 유명한 지인도 없고, 막무가내로 좋아하는 작가에게 써달라 조를 수도 없는 노릇. 나를 치료해준 담당 교수님께 부탁해야 하나, 최근 혈액암을 경험한 연예인에게 메일을 보내볼까. 원고 쓰기도 급한데, 추천사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때 편집자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은 MKYU 김미경 대표에게 부탁해 보라는 거였다. 출판사에 투고할 때, 내가 썼던 기사를 몇 개 첨부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 있던 김미경 대표 인터뷰 기사를 기억하신 거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고작 인터뷰 한 번 한 게 다였다.

그것도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었다. 그 이후에 계속 인연을 이어왔다거나 밥이라도 한번 같이 먹었다면 모르겠다. 그분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터뷰를 했겠는가. 나라는 기자가 있었다는 걸 기억조차 못 할 텐데. 바쁜 사람한테 덜컥 원고를 보냈다가 시간만 뺐을 게 뻔했다. 나는 안 되는 이유를 찾아 계속 편집자님을 말렸다. 편집자님은 은은한 표정으로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래도 한번 해보세요.”


‘그래. 편집자님한테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하고 하자.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은 내가 책 쓸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잖아. 서른 군데 투고했어도 연락 온 곳은 여기밖에 없었어. 그렇게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인데, 연락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잖아.’



내가 나를 겨우 설득했다.

용기를 쥐어짜 내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번 해보겠다고. 편집자님은 여전히 은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목소리를 높여 나를 몰아붙였으면 안 하겠다고 부딪혔을 텐데, 역시 은은한 사람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전화번호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뒀던 게으른 나 덕분에 10여 년 전에 받은 김미경 대표의 번호가 있었다.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정말 출판사에 투고할 때보다 더 어려웠다. 구질구질하게 그 시절에 썼던 인터뷰 기사 링크를 첨부해서 나를 소개했다. 아주 작은 기억의 불씨라도 살려보고 싶었다. 대화창 옆에 붙은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고 원고마저 전송했다. 몇 시간 뒤 1은 사라졌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래, 당연하지. 나라도 추천사 안 써주겠다. 편집자한테 해보긴 했는데 안됐다고 내일 말해줘야겠다.’



다음 날 발신인 ‘김미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원고를 보낸 그 김미경이었다. 흥분해서 뭐라고 통화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원고를 받자마자 다 읽었다고, 감동적인 글이었다면서 추천사를 써주겠다고 했던 것 같다. 기쁜 소식을 알리자, 늘 은은하기만 했던 편집자가 그날 처음으로 격하게 반응했다.


“꺄~ 작가님, 정말 축하드려요!”


며칠 뒤 “이 책을 통해 아무리 힘들어도 끝끝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라고 끝을 맺는 긴 글을 받았다. 비로소 내 책의 뒤편을 꽉 채운 추천사가 생겼다. 든든했다. 띠지에는 ‘김미경 추천’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박혔다. 내 이름보다 더 크고, 진하게 쓴 탓에 마치 ‘김미경이 쓴 책’처럼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미경이 쓴 책’처럼 보인다고 해서 실제로 ‘김미경이 쓴 책’만큼 팔리는 건 아니었다. 추천사란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확신을 더 해줄 뿐, 사지 않을 사람까지 끌어오는 효과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누가 추천사 빼고 다시 출판하겠느냐고 하면 당연히 그러지 말라고 손목을 콱 잡겠지만.



혹시 첫 책 출판을 앞두고 그럴듯한 추천사를 써줄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면, 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뽑아 적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명한 누군가를 믿고 고른 책 보다, 저자의 글 그 자체를 믿고 고른 책에 더 만족할 수 있을 테니까.



책이 나오고 보니 정작 유명인의 추천사보다 더 중요한 건 작가의 생명력이지 않나 싶다. 내가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매력적인 작가가 되어야만 책이 사랑받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잘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책도 같이 펄떡거리며 살아날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