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빗과 방울을 가져와 세팅을 마치면 미용실 오픈 준비 끝이다. 나의 유일한 손님은 그날 기분에 따라 양갈래 머리를 주문하기도 하고, 발레리나처럼 동그랗게 말아 올려달라고도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가 등교한 횟수만큼 머리를 손질했으니 숙련될 법도 한데, 어째서 등교 시간이 임박할수록 손놀림은 어설퍼진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쓰고도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 머리 묶다가 아이를 지각시킬 수 없어 서둘러 마무리를 해보지만, 삐죽 튀어나온 머리가 영 거슬린다.
머리로 예술을 하는 엄마들도 있던데. 나는 아침마다 곱게 빗어 하나로 묶어주는 것도 어려워 씨름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예쁜 머리’를 따라 해 보려다 아이에게 원망만 들었다. 주말 아침에 아이를 붙잡아 놓고 대충 묶으면 제법 예쁜데, 왜 등교시키려고만 하면 손이 말을 안 듣는 건지.
대충 쓸 땐 자연스럽고 나다웠는데 막상 책이 될 준비를 하려니 어디서 많이 읽어본 표현 같았다. 빗어도 빗어도 마음에 안 드는 아이의 머리처럼 써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간에 인상을 팍 쓴 채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기껏 쓴 걸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길 반복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 눈에는 이상해 보였나 보다. 마감기한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해놓고선 왜 저러나 싶었겠지. 아이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잘 쓰려고 하는 게 문제였다. 그럴수록 내 글은 방망이 깎는 노인의 방망이처럼 형태를 잃어갔다. 더 완벽하게, 더 멋지게 글을 수정할수록 분량은 줄었다. 누구든 읽으라고 쓰는 글인데, 누가 읽을까 봐 잘 못 쓰겠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서가에 누워있는 자식이 궁금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던 날. 같이 누워있는 수십 권의 책 중에서도 내 새끼는 단연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꺼내려는 순간, 그 말이 내 귀를 찔렀다.
“하여간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책 쓴다니까.”
“그러게. 일기는 일기장에 쓰지 왜 종이를 낭비하냐? 나무 아까워.”
나무 아깝게 책을 쓴 죄인이 된 것 같아서. 그 사람들이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휴대폰을 꺼내 ‘인증샷’을 찍었다. ‘개나 소나 쓴다’에서 ‘소’를 맡고 있던 나는 ‘개나 소나 쓴다’는 말을 여러 번 되새김질했다.
책 쓰는 것만 그렇건 아니다. 개나 소나 방송하고, 개나 소나 노래하고, 개나 소나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개나 소나 쓰는 걸 비난할 게 아니라, 개랑 소도 쓰는 걸 못 쓰는 사람이 문제 아닐까. 개나 소도 쓰니까 나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닌가.
대충 써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힘이 저절로 빠진다. 잘 쓰고 싶어지면 비공개로 쓴다. 나말고는 읽는 사람이 없는 일기장에 마구 쓴다. 그러고 나서 그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글로 다듬으면 된다. 처음부터 보여주는 글을 쓰려고 하다 보면 힘이 바짝 들어간다. 자꾸 구려 보여서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는 거다. 지금도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고 싶지만 꾹 참는다. 잘 쓰려는 마음은 개나 소한테 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