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선혜 Oct 30. 2022

공감 능력 없는 남편과 (잘)사는 비결

남편한테 인스타그램에서 본 MBTI 테스트를 해봤다. 

“나 우울해서 염색했어.”라고 말했을 때, “왜 우울했어? 무슨 일 있었어?”라고 감정을 헤아려 주면 F성향. “무슨 색으로 염색했어?”라고 정보를 물으면 T성향이라는 거였다. F인 사람은 속사정을 궁금해하지 않고 머리색이나 물어보는 T에게 화나지만, T인 사람은 염색을 했다니까 관심을 가져주는 것 아니냐며 억울해한다고. 하지만 우리 남편은 좀 다른 대답을 내놨다. 



“우울한 데 왜 염색을 했어?”

해맑은 표정으로 묻는 남편을 보며 한 일자로 입을 꾹 다물었다. 거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지적인 호기심이라고 해야 하나? 남편은 염색과 우울의 상관관계를 먼저 알아야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으로 학구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의 참 학자인 그에게 우울함과 염색의 상관관계에 대해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속 터지게) 해맑은 사람한테 구구절절 사정을 얘기하면 답답함이 밀려온다는 것을 안다. 말하다가 높은 확률로 화가 난다. 그렇다. 남편은 T, 나는 F다. 



사실 이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문득 아이가 꼬맹이였던 시절이 떠오른다. 하늘을 보며 “율아, 별님이 우리 율이 예뻐서 따라오나 봐.”라고 했더니 아이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엄마 별님한테 소원 빌자.” 별님을 향해 두 손을 꼭 모은 아이는 작은 입을 달싹거리며 무언가 간절히 빌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가을 밤.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 같은 아이의 손이 귀여웠다. 그때 잠자코 있던 남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기야, 저거 인공위성이야.” 인공위성에다가 소원을 빌고 있는 아이가 이상했던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긴 내 마음 몰라. 진짜 하나도 몰라.”

남편과 싸우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결혼을 후회했다. 나 좋다고 했던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오빠한테 시집을 갔어야지. 남편에 대한 원망이 과거의 나에게로 번졌다. 남편과 대화하면 벽보고 말하는 것처럼 막막했던 시절을 지나 남편과 다름을 조금씩 인정할 수 있게 된 건, MBTI 덕이 크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과몰입’하는 걸 비난하지만, 최소한 서로 다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MBTI 테스트를 통해 남편이 내가 기대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으니까. 이젠 T인 남편에게 공감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땐 글을 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내게 필요한 건 남을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마음속에 있을 때 희미했던 감정들은 까만 글자로 옮겨지면 비로소 선명해진다.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말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고, 뾰족한 해결 방법을 알고 싶은 것도 아닐 때.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만으로도 공감받는 기분이다. 내가 한숨 쉬면 “속상했구나” 다독여주고, 눈물 흘리면 “슬펐구나”하고 안아주는 느낌. 먼저 쓴 내가 남겨놓은 마음을 나중에 읽은 내가 온전히 받아주었다. 울면서 일기를 쓰고, 개운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나를 돌봤다. 



지금 남편에게 전화해서 “우울해서 염색했다”라고 말을 건네보라. 

“무슨 색으로?”라고 말한다면, (설마 “우울한 데 왜 염색을 하냐”는 사람이 우리 남편 말고 또 있지는 않겠지) 오늘부터 글을 쓰자. 남편의 공감 능력 없음을 탓하는 대신 뭐라도 써보자.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나를 돌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