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패다.
50일 동안 매일 글쓰기에 성공하면 참가비 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챌린지. 13일 만에 실패했다. 글 한편 쓰고 잔다고 해놓고선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사실 몇 달 전에도 이 챌린지에 참여했다가 실패했었다. 그때도 2주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50일 동안 매일 쓰면 ‘쓰는 습관’이 생길 것 같아서 다시 도전한 거였는데 ‘실패하는 습관’이 생겨버린 것 같다.
혼자서도 매일 쓰려고 해 봤지만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같이 모여서 쓰고 싶진 않았다. 느슨한 감시면 족했다. 그렇게 비대면 챌린지에 참여한 건데, 또 매일 쓰기에 실패했다. 마음 한편에 쓰고 싶다는 욕망은 늘 있지만, 쓰지 못한 날이 더 많다. 날이 너무 좋아서, 좋지 않아서. 쓰지 않을 이유가 많다.
SNS에는 임시저장 게시물이 공개된 피드보다 더 많다.
주절주절 써 내려가다가 이걸 누가 보기나 할까 싶어서, 이런 얘길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임시저장 버튼을 눌러버린다. 정작 내가 읽은 남의 글들은 ‘이걸 누가 본다고 쓰는 걸까?’ 싶은 글이었고, ‘이런 얘긴 공개적으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글이었는 데 말이다.
글 잘 쓰는 비법을 담은 책에서는 한 목소리로 말한다.
매일 쓰라고. 무조건 쓰라고. 많이 쓰라고. 유명한 작가 누구는 출근하듯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쓴단다. 글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쓰는 거라고 하는 작가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글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매일 쓰는 게 어려우니 말이다.
사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눈 떠서 아이 등교 준비시키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대충 점심 챙겨 먹으면 아이가 온다. 아이가 하교하면 집안의 주인공은 아이로 바뀐다. 학원도 안 다니는 집순이 딸내미는 해달라는 게 너무 많다. 간식 달라, 문제집 채점해달라, 수건 꺼내 달라. 이 와중에 한 줄도 쓸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일상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 사람의 대단하지 않은 일상 속에 대단하지 않은 일과가 연속되면 쓰는 나도 지겹고 보는 남도 지겨운 글들만 써진다. 경력단절녀인 전업주부 아줌마의 일상은 지극히도 평범하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에는 소설가 박완서를 떠올린다.
처음 쓰는 글로, 습작도 퇴고도 없이 단 한 번에 장편소설을 써서 데뷔한 그녀는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설가 박완서는 전업주부로 살림을 하느라 글쓰기는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재주를 타고나서 글쓰기를 연습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도 많이 쓰지 못해서 불안한 주부들이 있다면 조급해하지 말라’는 위로 아니었을까.
매일 쓰지 못해서, 글을 완성하지 못한 채 끼적이기만 해서 불안할 때마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시간’을 돌이켜 본다. 살 비비고 아이와 장난치는 시간, 수고한 남편을 뒤에서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는 시간,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을 음식을 만드는 시간, 보송보송한 수건을 벽돌처럼 쌓아 올리는 시간. 그렇게 쓰지 않고 그냥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간도 소중하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이제는 안다. 주부의 글쓰기는 전업 작가의 그것과 다르다는 걸.
매일 쓸 수도 없고, 무조건 시간을 내서 엉덩이로 버틸 수도 없다. 대신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불안해하면서 나를 몰아세우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하얀 화면 앞에 앉아 쓸 수 있다. 글쓰기에 빚진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 글쓰기가 나를 빛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