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선혜 Oct 30. 2022

"책을 내려면 SNS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서점에 가면 자꾸 화가 났다.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겠다, 베스트셀러 작가 아무나 될 수 있네, 비아냥거렸다. 인스타그램 몇십만 팔로워, 유튜브 몇백만 뷰 같은 홍보 문구가 쓰인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에세이 출판’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현직 출판사 편집자에게 제대로 뼈 맞았던 날. 일반인이 저자가 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기에 신청했던 강의였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자마자 나는 아이를 맡기고 지하철로 향했다. 파일에 넣어온 원고가 구겨질세라 가방을 조심히 받쳐 들었다. 강의가 끝나면 한번 읽어봐 주십사 부탁할 작정으로 챙겨 온 원고였다. 

저녁도 못 먹고 달려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사와 가장 가까운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열댓 명 남짓 수강생이 모이자, 마이크를 쥔 강사가 자신이 출판한 책을 보여주며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러분, 책을 내고 싶으신가요? 

오늘부터 무조건, 반드시, SNS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강의의 절반은 왜 SNS를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데 쓰고, 나머지 반은 SNS로 유명해진 책들을 소개하는 데 썼다. 인스타그램 계정조차 없던 나는 가져간 원고를 꺼내지도 못하고 가방만 만지작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강사는 좋은 글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에세이는 내용보다 누가 쓰느냐가 중요하단 말만 반복했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고, 대단한 위인이 아니고서야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결국 유명한 사람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우선 유명해져야 내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뜻이었다. 풀이 죽은 나와는 반대로 속절없이 빳빳한 원고 뭉치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책을 만든다는 사람이 어째서 SNS 얘기만 해? 글 쓸 시간에 인스타그램 방문자나 늘리라는 거야?”


화가 났다. 

반발심도 생겼다. 그 사람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작가라면 자고로 좋은 글을 써야지 않은가. 무작정 투고를 시작했다. 평소에 좋아하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서른 곳을 추렸다. 열 곳씩 3일 동안 메일을 보낼 작정이었다.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며 나를 애써 실망시켰건만, 손가락은 1분이 멀다 하고 메일함에서 ‘수신확인’ 버튼을 눌렀다. 



행운의 편지를 보낸 기분이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로 시작하는 그 편지. 아무도 답장해주지 않을 것만 같은 편지. 그래도 평범한 아줌마의 글에서 진심을 발견해줄 눈 밝은 편집자가 있기를 기도했다. 성실하게 ‘새로 고침’ 버튼만 누르다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그래, 출판사 직원들도 다 퇴근할 시간인데 나도 퇴근하자.’ 그런데 밥을 먹고 설거지를 막 시작하려던 그때,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주신 원고 잘 받았습니다. 순식간에 반 정도 읽고, 바로 연락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울림이 있고, 글이 참 좋네요. 이 책을 한번 진행해보고 싶은데요. 정식 계약까지는 여러 절차가 남아있지만, 원고 완성도나 콘셉트 등이 분명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혹시 그사이 다른 출판사와 계약이 될까 싶어 먼저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악! 아아아악!”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소리가 너무 커서, 곁에 있던 아이가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는 한참 동안 얼어버린 나를 깨뜨리려려는 듯 어깨를 툭툭 쳤다. 거짓말, 분명 거짓말이다. 이렇게 빨리? 아직 리스트업 해놓은 출판사에 모두 투고해 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SNS 스타도 아니고, 이미 출간을 했던 기성 작가도 아니고, 브런치 구독자 수도 300명밖에 안 되고, 내 원고는 그냥 일기에 불과한데? 



다시 메일을 읽어봤다. 

글이 참 좋다니. 울림이 있다니. 한 줄 한 줄 가훈으로 삼고 싶은 말이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면, 편집자가 진심으로 쓴 글이라면, 이렇게 평범한 내가 책을 낼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로 가슴이 뻥 터져버릴 것 같았다. 



며칠 뒤 출간 계약서에 사인하러 가서 물었다.

“SNS 계정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을지 몰랐어요.”

편집자와 함께 자리한 출판사 팀장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이라도 세상에 나와야 할 가치가 있다면 저희가 책으로 만들어야죠. 책에도 생명이 있어요. 좋은 책은 계속 살아 있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려도 독자가 알아봐 줄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편집자가 원고 읽자마자 얼마나 좋다고 팀원들한테 자랑했는데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책을 낸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야 왜 그날 문화센터에서 만난 편집자가 SNS부터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는지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전혀 유명하지 않은 나의 글에서 그저 진정성 하나만 보고 책을 내준 편집자를 만난 게 기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을 낸다는 건 출판이 아니라 창업과 같았다. 

내 책은 동네 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다. 가게를 차려 놓고 주인이 자리를 비우거나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손님이 오지 않는 건 당연했다. 계속 장사를 하려면 주인이 적극적으로 영업을 해야 한다. SNS를 통해 알려야 한다는 뜻이다. SNS를 하지 않아도 출판은 할 수 있지만, 무명작가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책이 팔리길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작가 스스로 활발하게 활동해서 내 책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게 해야 한다. 그게 SNS가 됐든, 브런치가 됐든, 강연이 됐든. 혼자서만 읽고 만족한다면 책장에 꽂힌 대학원 석사 논문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이전 01화 내 책은 울면서 쓴 일기에서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