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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Oct 30. 2022

내 책은 울면서 쓴 일기에서 시작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넋두리만 늘어놓는 육아일기도 지겹고, 남보란 듯이 쓰는 블로그 포스팅도 신물 났다. 뭔가 특별한 일이라도 있으면 쓸 맛이 날 텐데, 내 하루는 너무 지겹고 평범했다. 내가 읽어도 재미없는 글을 누가 볼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건 아이가 다 커서도 아니었고, 신나는 일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생겨서였다.



서른두 살, 암에 걸렸다.

나보다 나를 걱정하는 엄마, 대학병원에 다니면서 늘 환자를 봐야 했던 남편, 햇살처럼 유년시절을 통과하는 아이에게 나의 눈물, 나의 고통, 나의 그늘을 드러낼 수 없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그들이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먼 나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설명하려 할수록 막막해졌다. 혈액암 판정을 받고 무너지던 순간, 잠 못 들었던 입원 첫날의 기억,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병원으로 향하던 마음. 애써 묘사해도 제 경험 밖의 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인걸 알면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번번이 실망했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 느낄 땐 차라리 혼자를 택했다.

달팽이가 등에 진 집으로 제 몸을 숨기듯, 내 안으로 피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에 쌓인 말들은 늘어갔다.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토해내지도 못한 말들이 마음속에서 부패해버렸다. 오랜만에 꺼낸 말에서는 썩은 냄새가 났다. 상대를 비난하고, 나를 미워하는 말들이 아무렇게나 쏟아졌다.



아무도 마주하지 않고, 누구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그때부터 일기를 썼다.

‘대나무 밭’을 찾는 심정으로. 어린 나에게는 자랑이 되어주었던, 다 큰 어른인 나에게는 기자라는 명함이 되어주었던 글쓰기. 오랫동안 할 필요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일이었는데,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니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쓴 글은 자랑스럽지 않았다.

돈벌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마음속에 부유하는 찌꺼기를 뭉쳐내면 글자가 되고, 슬픔을 토해내면 단어가 되고, 아픔을 게워내면 문장이 되었다. 그렇게 누가 보든 말든 시키지도 않는 글쓰기를 계속했다. 처음으로 쓰면서 자유로웠다.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나만을 위해 썼다.



그렇게 몇 달이나 지났을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집 같은 블로그에 손님이 생겼다. ‘제 마음이 꼭 그렇답니다.’, ‘맞아요, 제가 그래서 속상했나 봐요.’ 내 마음 편하려고 끄적인 글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반가웠다. 글을 쓰면서 비워낸 마음이 채워지고 있었다.



울면서 쓴 일기를 모아 책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들이 전해준 응원 덕분이었다. ‘나도 그래요’라는 말 한마디에 자신감이 생기고, ‘좋아요’ 표시 하나에 힘이 났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쓴 글도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자를 그만둔 지 십 년 만에 ‘작가’를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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