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번째 순간
언젠가 나는 쉬운 말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었다. 어떤 말이든 진심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제 나는 쉬운 말을 잘한다. 아무렇지 않게 기약이 없는 다음을 말하고, 눈앞의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결국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어른이 되었다. 이런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쉬워진 말만큼 어려워진 마음이 시위하듯 버티고 서 있는 어느 날을 제외하면. 누군가의 쉬운 말에 제멋대로 기대했다 실망하고, 나의 쉬운 말로 누군가의 마음에 빗금을 그은 게 분명한 그런 날들을 제외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