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8, 2023
올가을에는 조계사에 자주 갔다. 경내에 장식해 둔 국화꽃을 보기 위해서다. 점심때마다 부지런히 발을 옮긴 덕에 꽃봉오리가 벙글고 활짝 피었다가 다시 이울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꽃은 시간의 경과를 투명하게 드러내어 좋다. 세상엔 지나고 나서야 지난 줄 알게 되는 일들이 너무 많고, 그런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꽃이 피었다 지는 풍경이 달리 보인다.
웬 중년 여성 무리가 말을 걸어온 건 여느 때처럼 국화꽃 사이를 걷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바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에 카메라 앱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꽃이나 사진이나 순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닮은 데가 있다. 사람들이 만발한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맙습니다. 인연입니다.”
부탁한 이들이 섭섭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넉넉한 수량의 사진을 찍고 난 후, 가볍게 목례하며 돌아서는데 무리 중 누군가 외쳤다. 소리에 놀라 다시 뒤를 돌아보니 거기 환한 미소가 있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한다더니 과연 그런 모양이었다. 비록 짧은 인연일지라도, 인연의 귀함을 알고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이란 보배롭다고 생각하며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경내에는 때를 맞은 국화꽃 향기가 은은히 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