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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go Mar 25. 2021

당신이 편집자가 되면 뼈저리게 느낄 장단점 13가지

<언니만 따라와, 출판편집자 취직 길라잡이> #1


여러분들은 어떤 통로로 편집자란 직업에 다가오게 되셨나요? 저처럼 책?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 전 책에 홀려 직접 출판계에 들어와 보니 원래 예상했던 장단점도 있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어요, 여기서 그걸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장점부터 볼게요.



글쓰기글 읽기가 업이 된다     

출판편집자를 진로로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글을 쓰고 읽는 걸 즐거워하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사가 칼을, 미용사가 가위를 제 몸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듯이 편집자는 글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다양한 글을 써내야 해요. 제목을 포함한 띠지, 표지, 앞날개 뒷날개에 들어갈 각종 문구를 작성해야 되죠. 언론사와 인터넷 서점에 보낼 보도자료는 물론이고요. 또한 문장력이 약한 저자의 책을 낼 때는 글을 거의 갈아엎고 다시 쓸 정도로 공을 들여야 돼요(이건 책 분야마다 다를 거예요). 글을 읽을 일도 많습니다. 편집자라고 하면 보통 떠올리는 교정교열 업무가 그렇고요, 외서 검토와 투고 원고 검토도 글을 읽는 작업이죠. 뿐만 아니라 기획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자기 관심 분야 카테고리의 신간을 읽고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움직일 감동과 지식을 담은 콘텐츠스토리를 다룬다     

“편집자의 일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상품의 기능이나 가격에서 큰 차이가 없다. 

앞으로는 ‘상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미노와 고스케, 《미치지 않고서야》에서-     


출판업을 단순히 ‘책’이라는 매체에만 가두지 않고 이야기와 지식을 담은 콘텐츠로 볼 때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출판사도, 편집자도). 세계 1위 기업, 아마존이 다른 어떤 상품보다 책을 가장 먼저 팔았던 이유도 책이 지닌 잠재력을 알았기 때문이죠.《출판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엑스북스)를 읽으면 출판 사업의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출판은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디자인한 결과물인 지식을 독자에게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출판사가 콘텐츠 서비스 기업을 목표로 플랫폼을 구축해 나가 독자, 저자와 다양한 교류를 하고 이야기가 재생산되는 공간을 꾸려야 한다”고 제안했죠. 

또, 저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일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출판편집자가 되니 취미가 일과 연결되어 기뻤어요.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학습만화는 편집자가 먼저 이야기 구조, 콘셉트를 만든 후 저자들을 섭외하거든요. 또한 만화 전개가 느슨하거나 재미가 없으면 작가님께 피드백하고 편집자가 스스로 대사와 장면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프리랜서부터 창업까지 모두 OK     

프리랜서의 로망을 가진 분이라면 출판편집자로 진로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교정교열을 전문으로 봐 주시는 외주자도 있고, 회사 외부에서 책 편집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출판사를 창업하는 진로도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사업들에 비해 창업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고, 자기가 해왔던 일을 이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죠.


      

작가와 번역가가 꿈이라면?     

책을 만드는 출판편집자가 된 이후 저자 이력을 자세히 살피게 되었는데, 편집자 선배님들이 작가나 번역가가 되는 경우가 참 많더군요. 제가 아는 분만 해도 그림책 작가, 만화 글 작가, 장르 소설 작가, 어린이 책 작가, 에세이 작가 등등 다양합니다. 편집 일을 하면서 콘텐츠를 이해하고 기획하는 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번역가분들은 에이전시에서 출판사와 연결해서 번역을 하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직접 외서를 검토해 출판사에 제안하는 안목을 가진 편집자 출신 번역가도 있습니다.     



다양한 저자와의 설레는 만남     

책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러 저자분을 만나 아이디어를 주고받습니다. 이런 만남이 기대되는 분들에게는 큰 장점일 거예요. 한 선배님의 말씀에 따르면 저자와 호흡이 잘 맞을 때에는 함께 책을 만들어 나간다는 기분을 흠뻑 느낄 수 있답니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든 이들은 원고에 대한 자신감은 많지 않지만 편집자의 조언에 쫑긋 귀를 기울입니다. 해당 분야를 종횡무진 누볐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되죠.


      

사고가 확장되는 즐거움     

책을 만들 때마다 편집자는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좁혀 있던 사고가 확장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죠. 저는 심해 생물을 다룰 때는 바다 깊숙이 사는 생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고양이 에세이를 편집하며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고요, 어린이 자기계발서를 만들며 오히려 제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등, 한 사무실에서 다양한 세계를 접하게 되어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편집자는 인생 상담자기획자마케터이자 카피라이터?!     

편집자는 꽤 여러 역할을 맡고 책을 만드는 작업을 지휘해나갑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작가의 어려움을 달래주는 인생 상담자가 될 때도 있고, 처음 책을 만들 때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 기획합니다. 또, 자신이 만든 책의 마케팅도 누구보다 많이 생각하죠. 마케터들은 회사의 여러 책들을 동시에 담당해서 한 책에 시간을 많이 쏟기 어려운 경우도 많거든요. 그리고 책 표지의 문장들, 제목을 쓰는 카피라이터의 역할도 편집자가 맡습니다.           

    

장점은 어느 정도 얘기했으니 이제 단점을 이야기해봅시다... 

저는 출판편집자란 직업을 선택할 때 단점을 자그마하게 봤어요. 이 정도면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어떤 단점들은 해를 거듭하면서 덩치를 크게 불리더군요. 편집자에 관심이 생긴 여러분은 장점에 푹 빠져서 단점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편집자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단점을 바라봐야 합니다. 나중에 진로를 바꾸는 수고를 할 수도 있어요.           



이 연봉실화인가요?     

돈이 세상의 주인공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봉이 적다는 건 꽤 서글픈 현실이죠. “님아 이 강을 건너지 마오~” 라고 현직자들이 말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냐고요? 초봉이 2,400만 원이면 ‘잘 받았다.’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업계입니다. www.kreditjob.com 크레딧잡 사이트에 가서 유명한 기업들과 유명한 출판사들 이름을 하나씩 쳐보세요. 대략적인 연봉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잘 판단하셔야 합니다. 현실적으로요. 출판편집자란 직업에 푹 빠진 여러분들의 귀에는 잘 안 들릴지 모르지만 앞으로 인생에 이 직업이 미칠 영향은 큽니다. 주거지, 결혼, 생활 방식, 자녀 교육 등등. 


     

편집자가 전문직이라고?     

출판편집자는 전문직입니다. 하지만 전문직 하면 떠오르는 변호사, 의사, 회계사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죠. 내가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해 달려온 길인데 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보니 제 직업은 남들이 볼 때 그렇게 빛나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책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요. 사실 편집자는 출판 과정에서 감독의 역할을 합니다. 영화감독의 이름은 앞에 나오지만 편집자의 이름은 표지 어디에도 실리지 않습니다. 편집자는 겸손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판사는 모두 결국은 중소기업     

매출 1위, 2위를 다투는 단행본 출판사도 분류상으로는 중소기업입니다. 사회에서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과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다르죠. 또한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대기업에 비해 복지에 한계가 있고, 시스템이 정교하게 갖춰지지 않았다고 입사 후에 느낄 수도 있습니다. 10인 이하의 출판사는 더더욱 그렇고요. 특히 신입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가 많습니다(그래서 회사들이 출판 학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큽니다).       



근속 연수도실무 정년도 짧다     

《편집자 되는 법》(유유)이라는 책에 출판편집자는 “근속 연수 3년, 실무 정년 마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체감하기에도 그렇습니다. 저는 첫 번째 회사에서 1년, 두 번째 회사에서 1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이제 7개월쯤 되어가네요. 이직이 활발(?)해 계속 사람이 바뀌고, 높은 분들은 40대 초중반이고 그다음 연령대인 50대는 거의 다 퇴직하는 분위기예요. 이른 퇴직 후에 뭘 할지 생각을 해둬야 하는 직업입니다.


     

워라벨을 위협하는 출퇴근시간      

전 출퇴근에 4시간쯤 걸립니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파주출판단지에 출판사가 있는 경우 대체로 출퇴근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되죠. 그래서 파주로 이사 가는 사람, 합정 근처로 이사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합정에 파주 직행 버스가 있습니다). 파주는 교통이 불편해서 자동차가 있어야 편하게 움직일 수 있죠. 마을버스는 배차 간격이 25분~80분이고요. 직행 좌석(빨간 버스)은 11분~20분이에요. 합정 근처는 월세도 전세도 비싼 게 흠입니다.     



작가님 제발플리즈~     

앞에서 여러 저자들과 만나는 게 즐거운 일이라고 했습니다만, 어디 매일매일이 즐거울까요? 매운 맛, 쓴 맛나는 저자와의 관계는 속을 쓰리게 합니다. 마감을 못 지키시는 건 너무 흔한 이야기고요, 피드백을 드려도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아,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어느 작가님은 집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 수리공 대신 편집장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고 하고요, 어떤 분은 집 이사를 하는 데 출판사 영업자들이 가서 도왔다고 하니, 무시무시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출판계에 머무는 이유     

솔직히 처음에는 제가 능력 있는 편집자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착각이었어요. 조금 더 체계를 갖춘 세 번째 출판사에서 제 실력이 드러났습니다. 재능도 없고, 세상의 인정을 받기도 어렵고, 깨알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출판사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을 할 때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편집자라는 직업 안에는 제 작고 귀여운 꿈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 사람을 낚는 어부, 메시지의 전달자 등등. 어떻게 보면 가장 큰 장애물은 돈인데, 이 꿈들이 열매를 맺게 되면 자연스레 돈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집자로서의 능력을 갖춘 후 작정하고 돈 벌기로 결심하면 얼마든지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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