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을 가는 길 양쪽 옆으로 숲이 있어 그 사이에 긴 산책 길이 있다. 아침마다 수영장을 가느라 정해진 시간에 산책길을 걷다 보니 자주 스치는 사람들이 생겼고 얼굴도 익숙해졌다. 잠깐씩이지만 올봄부터 지금까지 여섯 달 동안이나 만났으니 이제 인사만 하면 한참 수다를 떨어도 될 것 같은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내 앞으로 자주 보던 여자 두 분이 산책 중이셨다. 검은 머리가 더 많은 여자와 흰머리가 더 많은 여자의 아침 산책이 보기 좋아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걸었다. 뒤에서 보니 바지도, 가방도, 머리 모양도 똑같았다. 둘은 사이즈만 다른 회색 바지를 입고, 핸드폰과 손지갑이 들어갈만한 똑같은 가방을 메고, 같은 미장원에서 자른 것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심지어 걸음걸이마저 닮았다. 막연히 그들이 엄마와 딸 사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색 바지는 누가 샀을까? 딸이 바지 한 벌을 사면서 모양이나 색깔이 마음에 들어 엄마 것도 작은 사이즈로 한 벌 더 샀을까. 그럼 가방은? 시장을 둘러보던 엄마가 모양도 무난하고 가격대도 적당한 가방을 발견하고 두 개를 사서 딸과 한 개씩 나눠 가졌을까. 미장원의 커다란 거울로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딸의 얼굴과 주름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을 보며 서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거울이 마법이라도 부려 그 둘에게 앳된 딸의 얼굴과 젊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두 여자의 뒤를 따라 산책길을 걸었다.
늦가을에는 똑같은 모자를 쓰고 겨울에는 똑같은 장갑을 끼고 여전히 오손도손 걷고 있을 그녀들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