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유미
2년 전 작은 결심으로 시작한 일요일 달리기는 이제 완전한 주말 루틴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달리기를 처음 배웠던 모임에 나가 함께 뛴다.
모임의 기본 코스는 5km이고, 선두 그룹은 7km나 10km를 달린다. 나는 일주일에 겨우 한 번 나가기에 기본 코스를 선택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맨 뒤에서 3km를 겨우 달렸지만, 이제는 숨이 차고 여전히 꼴찌로 들어도 5km는 완주한다.
코치님을 선두로 함께 출발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선두 그룹은 더 먼 길로 향한다. 언젠가 나도 그들과 발을 맞출 날을 그리며, 몇 달째 같은 코스를 연습하듯 달린다.
폭염경보가 일상이던 지난여름, 익숙한 코스를 뛰다 보니 더위마저 익숙해졌다. 그러자 잡념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힘들어 아무 생각도 못 하던 지난날에 비하면 제법 체력이 늘어난 모양이다.
그날 찾아온 잡념은 며칠 전 고장 난 에어컨이었다. 바로 새 에어컨을 사면 될 일이었지만, 내년 봄 전세 계약이 끝나면 이사를 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버텨볼까 싶었다. 내 집이 있다면 이런 고민을 안 해도 될 텐데 하며, 그냥 에어컨을 사면 될 일을 내 집 마련이라는 중대한 문제로 키워 버렸다.
한 동네에서 몇 해마다 이사를 다니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났다. 화실도 가깝고 운동하기 좋은 공원도 있어 지금 생활에 만족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아마 이렇게 계속 살 것만 같아서 대출을 내 이 동네에 있는 저렴한 투룸이라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했다.
친구의 의견은 달랐다. 다른 지역도 알아보고, 가능하다면 아파트를 사라고 했다. 앞날이 아직 무궁무진한데 익숙함과 귀찮음 때문에 섣불리 결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단호한 그녀 앞에서 ‘내 형편에 아파트를 어떻게 사냐?’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라 치부하기엔, 친구의 진지한 표정 속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의심은 남았다.
‘퇴근 후 그림을 그리는 내 일상이 이제 와서 달라질 수도 있을까?’
그때였다. 앞서가던 코치님이 뒤를 돌아 나를 향해 손짓했다. 선두 그룹이 향하는 코너로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그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중고 에어컨, 아파트 청약, 그리고 ‘왜 난 이 모양이지’라는 잡념까지 모두 사라졌다. 생각은 멈추고 현재로 돌아왔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정말 나를 부른 게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더는 힘들어서 안 된다고 울상을 지었지만, 그는 이미 돌아서 가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코치님 뒤를 따라갔다. 낯선 코스로 접어들자마자 호흡이 거칠어졌다. 오르막길은 언제쯤 나올까? 속도를 맞출 수 있을까? 뒤처지면 길을 잃는 건 아닐까? 불안이 숨소리만큼 커졌다.
호흡에 발을 맞추라는 코치님의 말을 떠올리며 가쁜 숨을 고르고 일단 앞만 보고 달렸다. 어차피 길을 잃어도 동네 공원일 뿐이고 오르막이 나오면 걸어도 된다고 자신을 달랬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날, 나는 6km를 처음 완주했다. 그러고 나니 7km도 곧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 주에는 선두를 바짝 따라가고 싶어 체력을 좀 더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는 거리나 속도를 늘릴 수 없으니, 주중에도 한 번씩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계단을 엘리베이터 대신 오르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다. 변화는 나를 움직이게 했다.
10년 전, 망설이며 동네 화실 문을 열던 내가 이제는 화가로서 전시 소식을 전하러 화실을 찾는다. 그저 퇴근 후 흘려보내던 시간에 뭐라도 해보려던 작은 시도가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그렇다면 다시, 10년 뒤의 나 역시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이대로의 삶도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 매일 아침 퇴사를 꿈꾸며 자유롭게 그리며 사는 삶을 바란다. 그러나 정작 용기가 없어 사직서를 던지지 못했다.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룬다는 변명 속에서 어느새 5년이 흘렀다.
돌이켜 보니, 5년 전에도 나는 또 다른 두려움에 갇혀 있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 화가의 꿈이 커졌을 때, 나만의 작품을 시작해야 한다는 막막함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변화보다 눈물이 쉬웠다. 하지만 눈물을 쏟아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행동해야 했다.
화가가 되겠다면서 캔버스를 앞에 두고 방황하던 내 모습이 한심했지만, 그때 흘린 눈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방황 끝에 나는 ‘판다’를 만났고, 그 독립적인 동물에 자신을 투영해 유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형 작업을 구상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도 고심하고 있다. 물론 예전 방식대로 그리고 싶다며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포기했을 때보다 해냈을 때의 기쁨을 알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변화보다 어려운 일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만큼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일도 없다.
마침내 6km를 완주했듯, 언젠가 세 들어 살던 시절을 떠나 내 집을 장만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근사한 작업실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든, 중요한 건 계속해서 그리겠다는 마음이다.
주저앉아 망설이기보다는 변화무쌍하고 어떤 모습으로든 나답게 빛날 미래를 기대하며 기꺼이 땀 흘려 보려 한다. 망설임으로 흘릴 눈물 대신, 변화를 준비하는 땀이 새로운 계절을 열어줄 것이다.
※「변화보다 눈물이 쉽다」는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 제목이자, 제임스 볼드윈의 한 인터뷰에서 비롯된 문장입니다. 마크 브래드포드 전시에서 마주한 그 문장이 오래 남아, 이 글의 제목으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