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지이 Mar 15. 2024

제2차 티켓전쟁.

진정한 전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얼리액세스 티켓을 구매한 지 일주일.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알람이 떴다.

얼리액세스티켓 구매에 실패한 패잔병들을 포함한 모두를 위해 <피엘라벤클래식>의 티켓이 정식오픈되는 날이다. 2024. 진짜 본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관련된 카페에 올라온 글, 클래식 관련된 태그를 붙인 SNS의 글들에서 그날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티켓이 많이 풀릴 것이다, 지난번처럼 1~2분 안에 모두 매진될 것이다 등등... 흔히 말하는 '카더라' 소식에 마음이 또다시 일렁일렁 요동쳤다.


난 조용히 마음속으로 한국티켓을 노려봤다. 또 다른 티켓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 냅다 기름을 부어버렸다.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미국티켓을 거머쥔 나로서는, 한국클래식의 참가는 조금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행기 타고 1시간 반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제주도에서 펼쳐지는 꿈의무대를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심지어 클래식이 열리는 제주도는 도착하자마자 정체불명의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게 하는 사랑과 낭만, 환상의 섬이 아니었던가.

얼리액세스티켓이 오픈되는 시간과 동일하게 본티켓도 오픈한다기에 (중부유럽표준시로 시간을 표기하니 한국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나는 티켓 오픈 10분 전부터 경건한 자세로 신용카드와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반짝이는 두 눈. 한껏 긴장된 어깨. 결의에 차 꼭 다문입술. 전쟁에 참전하는 용사와 다를 바가 없다.



중부유럽표준시 오전 10시 티켓오픈. 한국시간 오후 6시.

모든 티켓팅의 성패는 신명 나는 손가락의 현란한 춤사위에서 판가름이 난다. 휴대폰으로 진행할 때는 화면 위에서, 컴퓨터로 진행할 때는 키보드 위에서 각자 빠른 템포의 심장소리에 맞춰 손가락춤사위를 펼친다.

빠른 자만이 획득하고 느린 자는 어떠한 틈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꽤나 잔인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오후 5시 59분. 티켓전쟁 1분을 남겨두고 나조차도 생각보다 더 큰 긴장감에 휩싸여 마른침을 연신 삼켜댔다.

오후 6시 00분. 전쟁의 막이 올랐다. 공기조차도 조용해지는 순간 한이 어린 열 손가락의 춤사위가 시작되었고 , 얼리액세스 당시 티켓팅을 몸이 기억하는 듯 순순하게 적어 내려간 신청서에 마지막단계와 마주쳤다. 제발 다음단계로 넘어가줘 제발.


티켓이 마감되었습니다

또.또6분이다.

이 모든 일이 또다시 지옥의 6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왜 6분의 벽은 깨지지 않는 건지. 영어키보드의 D는 왜 자꾸 숨어서 보이지 않는 건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대체 얼마나 빨라야 성공하는 건지 알고 싶어 관련된 카페에 접속했다. 티켓팅 성공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공후기를 작성했을 그들이었다.

10분을 지나 15분이 되어도 글이 하나가 안 올라오고

SNS도 조용하다. 이상하고도 싸늘한 느낌에 지난번 미국클래식에 대해 조언을 구했던 분께 여쭤보았다.

무엇인가 이상하니 멈추지 말고 계속 시도해 보라는 게 클래식선배님의 조언이었다. 성공담도 안 올라오고 아무리 피 튀기는 전쟁이지만 이렇게 짧은 순간에 티켓이 매진될 리 없다고 하셨다.

새로고침. 새로고침. 새로고침. 창을 닫았다가 열고 또 새로고침. 새로고침...

내 인생을 새로고치는 기분이 들정도로 새로고침과의 혈투를 벌인 그때 접속창에 다시 신청서가 떴고, 차례차례 입력을 했다. 그리고 다음다음다음... 카드정보를 입력하고. 다음.

티켓팅이 시작되고 한참후에 벌어진 일이였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혈투 끝에 얻어낸 축하문자를 보니 손이 바르르 떨려왔다.

서버의 과부하로 인한 오류인지, 티켓을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판매한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 땅에 많은 티켓팅참전 용사들은 티켓오픈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승리의 맛을 느꼈고, 각자가 쟁취한 승리의 깃발을 관련카페 게시글에 꼽기 시작했다.

찬란한 성공담과 처참한 실패담이 뒤섞여 카페게시판은 웅성웅성 난리가 났고, 저마다 축하와 위로를 전하는 따뜻한 진풍경을 자아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연으로 가고 싶어 하는구나를 새삼 느끼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엇이 그들을 이 전쟁으로 몰아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의 손가락을 춤추게 하고 , 무엇이 그들을 세상밖으로 이끌어내는 걸까.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은 20킬로가 넘는 가방을 둘러메고 , 화장실도 없는 자연 속을 걷고 또 걷고 싶어 하는 걸까?

승리한 용사들은 티켓을 건네받고 어떤 마음으로 길 위에 서고, 이토록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걷는 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누구나가 자연으로 나가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트래킹행사에 참가한다는 건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특별한 경험은 시작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것 같기도 하다.

작은 성공을 자주 하는 사람은 성취감이라는 맛을 알아버려서 큰 성공으로 가는 법을 알게 된다고 했다.

내 두 번째 성공이다. 내 버킷리스트에 캐캐 묵었던 한 줄이 사라지는 일에 두 번이나 가까워진 거다.


문득 길 위에서 만날 승자들의 미소가 궁금하다.

그리고 내년에도 난 새로고침의 역사를 또 쓸 예정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그리고 신청서 창이 열릴 것이다.

진짜 용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배웠다.

제주에서 만나요!





 

 




작가의 이전글 충실할 충. 장비 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