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강

by 들풀



가을이 깊어지며, 코트에는 붉은 낙엽이 흩날렸다.

그의 지도는 점점 더 치밀해졌다.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코트에 나와 스텝을 밟고,

저녁이면 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라켓을 휘둘렀다.


"스텝, 스텝을 기억해야 해."

"팔이 아니라, 온몸으로 스윙해야지."

나는 지칠 대로 지쳐도 그의 목소리에 이끌려 다시 일어섰다.

그와 함께라면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는 종종 말했다.

"당신을 전국대회에서 우승시키고 싶어, 그게 내 욕심이야."

그 순간, 그의 눈빛은 단순히 코치의 욕망만은 아니었다.

마치 삶의 또 다른 목표를 찾은 듯, 불타는 열망이었다.


8월이 지나고 9월이면 전국대회가 한창 열린다.

나도 출전하기로 했다. 처음 참가하는 공식 대회였다.

대장 아저씨는 내게 꼭 맞는 파트너를 찾아주었다.

구력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성격이 꼼꼼하고 집중력이 뛰어난 언니였다.

"네가 네 플레이만 해주면 돼. 괜찮아."


대장 아저씨의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

대회 전날 밤, 라켓을 손질하며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동안 흘린 땀방울과 코트 위에서의 호통,

때로는 달콤한 격려들이 머릿곳을 스쳐갔다.

'드디어 시험대에 오르는구나.'


대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부터 달랐다.

여기저기서 라켓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 긴장으로 굳은 얼굴들,

그리고 선수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나를 압도했다.

코트에 들어서자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차올랐다.

경기는 생각보다 치열했다.


파트너 언니는 안정적으로 공을 넘겨주었고

나는 한쪽에서 스매시를 노리며 애썼다.

하지만 실수가 잦았다.

라켓에 정확히 맞지 않은 공은 허공에 힘없이

떠오르거나 네트를 맞고 떨어졌다.

대장 아저씨의 목소리가 관중석에서 울려 퍼졌다.


"집중해. 네 리듬으로 가."

다행히 예선탈락은 면했지만. 64강전에서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스코어는 아쉽게도 한 게임,

아, 마지막 공이 아웃 판정을 받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코트에 주저앉았다.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쨍한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 꽂혔다.

옆을 보니 파트너 언니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처음 치르는 대회 치고는 잘했어. 너무 잘했어."


관중석의 대장 아저씨는 묵묵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실망은 없었다.

오히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는 굳은 믿음 같은 표정이었다.

그 눈빛에 나는 다시 라켓을 움켜쥐었다.


대회 당일 날 움켜쥔 라켓이지만,

64강에서 탈락한 뒤 며칠 동안은 라켓을 잡기조차 싫었다.

코트에 서면 자꾸 마지막 아웃 공이 떠올랐고 심장이 괜히 두근거렸다.


'난 역시 안되나 봐.' 속으로 수십 번을 되뇌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대장 아저씨는 전화 한 통을 걸어왔다.


"포기하고 싶지?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내가 끝까지 만들어줄 거다.

우승할 수 있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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