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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지우며

by 비야 Nov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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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그 여름날 같이 봤던 능소화 향이 남아있겠지. 이것 봐,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향이 남아있네. 손소독제를 세 번 꾹꾹 눌렀다. 알콜향이 너를 밀어냈다. 아, 아직이다. 그날 해질녘 포장마차에서 함께 먹은 순대랑 떡볶이 냄새도 아직 남았다. 지워져라. 사라져라. 비누거품 가득 부풀려 너를 쫓았다. 너는 어지간히도 잔향이 세다. 독하다. 밀어낸 시간이 긴 만큼 너의 향은 더 고극해졌다. 수십 번, 수백 번 게워내도 사라지지 않는다.잔향을 좇아 너를 향했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공간은 이렇게 남았다.

  왜 너는 없을까.
  바뀐건 시간 뿐인데 너는 영영 보이질 않을까. 우리 만난 이 바닷가에는 철썩이는 파도, 새맑은 햇살, 바삭이는 모래, 그리고 나도 다시 있는데.

  이제는 없어야 하는구나.
  나는 파도와 햇살과 모래와 온갖 너를 털어내고
셀 수 없이 너를 떠난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계속 너를 떠난다. 터벅터벅, 소리마저도 주워서 남김없이, 너를 떠나고,

  다만 향이 남아있다. 반드시 남아있다. 나는 안심해서 애타서 오늘도 네 향을 지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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