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끊없는 후회 그리고 선택

by 슬그머니

정오가 지났는데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집안에는 고약한 곰팡이 냄새와 술냄새 쓰레기등이 섞인 악취가 진동했다. 틀어놓은 티브이소리도 잠재울정도로 크게 코를 골던 김하율이 금세 코골이를 멈췄다.

김하율의 거칠고 떼가 잔뜩 낀 손이 까딱거리고 움직였다. 깊은숨을 내쉬자 강한 알코올냄새가 몸속에서 밀려나듯 밀려 나왔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고는 김하율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맨날 보는 똑같은 천장, 빛이라고는 고장 난 것처럼 깜빡거리는 누런 등불뿐이었다.


"아."

'저 망할 놈의 전등을 갈아야 하는데, '


그걸 매번 생각하면서도 김하율에게는 그런 힘도 없었다. 생각이라도 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서 끈적끈적했다. 입고 있던 나시는 언제 씻었는지도 모르게 누레져 쉰내가 났다. 베고 있던 베개도 누렇다 못해 갈색으로 변색되었고, 이불은 언제 빨았는지 원래의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그는 손을 들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언제 감았는지도 모를 머리를. 일어나서 제일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러다 눈을 굴려 티브이를 보았다. 언제 틀어놨는지도 모를 티브이는 혼자서 계속해서 화면을 바꾸며 소리를 냈다. 뻔하디 뻔한 얘기들이었다. 잘 사는 사람들의 얘기. 어디를 가서 뭐를 먹었다. 이런 것들이 맛있다더라. 요새는 뭐가 어떻다더라.


하율의 귀에는 하나같이 헛소리들이었다. 귀찮은 듯이 하율은 뒤돌아 누웠다.

“헛소리. 다 헛소리야.”


“띵동.”


팔목에 채워진 팔찌에서 알림이 울리며 불이 들어왔다.


얼핏 보면 손목시계, 스마트 워치급으로 생각하겠지만. 수급자 관리용 스마트 워치였다. 건강정보뿐만 아니라 위치까지 파악되는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모든 정보를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제공했다.


"알코올 위험군입니다."


시끄럽게 귀찮은 알림이었다. 끄고 싶어도 끌 수 없어서 워치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폐기되는 걸 알았으니까 하율은 힘없이 초점 없는 눈으로 그 워치를 보았다.

"김하율 씨 기상시간을 4시간 초과하였습니다.”


“알코올 치료 교육을 미수강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재수강을 하시겠습니까? 재수강을……."


하율은 신경질적으로 워치를 껐다.


"꺼져. 좀 꺼지라고!!"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하율은 비틀거리며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5평 남짓한 원룸 걸을 때마다 바닥에 발바닥이 끈적끈적하게 붙었다가 떨어졌다. 싱크대에는 언제부터 쌓여있었는지 알 수 없는 설거지거리가 썩어갔다. 냄새가 지독해도 하율은 익숙한지 그 밑으로 나뒹구는 술병들을 치우면서 새로운 술병을 두 병을 꺼냈다. 그리고 한 병을 땄다.


"크흐"


거침없이 꺼낸 그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미 빨개진 그의 얼굴이 더 빨개진 것 같았다.

빈 속에 알코올이 다시 채워졌다.

물 마시듯 들이켜고는 그는 비틀거리며 주저앉듯이 벽에 기대어 앉았다. 비쩍 마른 그의 얼굴에 티브이의 빛이 아른거리면서 하율의 얼굴을 지나갔다.

알코올이 온몸에 돌기시작했다.


"하."


깊은 한숨밖으로 술냄새가 잔뜩 풍겼다. 초점 없는 눈으로 하율은 방 한쪽을 응시했다. 방 쪽 한 곳에 놓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사진.


환하게 웃는 김하율과 그의 부인과 자녀들이 보였다. 지금과 다르게 생기 넘치는 그의 얼굴에는 화사한 햇빛이 나른하게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단란하고 화목해 보였다.


썩은 동태눈처럼 흐리멍덩한 그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하율은 술병을 들어 다시 타들어가는 목을 채웠다. 싸한 알코올이 목을 태워내려 가는 것만 같았다.

"보고 싶다."


언제 면도한 지도 모를 덥수룩한 수염을 한 채로 그가 웅얼거렸다. 김하율에게도 행복한 삶이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무너져 내린 했지만,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하루하루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노력했었다.

하지만 사업의 실패하고 어느샌가 가족들이 그를 떠났고, 정신 차려보니 이런 삶을 살고 있었다.

"크하."


어느새 한 병을 다 마셔버린 그는 술병을 내려놓다가 놓쳐버렸다. 힘없이 병은 데구루루 굴러가 가족사진을 쳐버렸다. 가족사진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하율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술을 끊으려 했는데.... 하.... 하...."


헛웃음을 지으며, 하율은 흐느껴 웃으며 울기 시작했다. 그는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가 한탄스러워서 인지.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인지, 되돌릴 수 없는 걸 알아서 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쓰레기 더미 속 작은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수첩을 펼쳤다.


"수급자에서 벗어나서 다시 살아보자."


그가 언제 적었는지 알 수 없는 기록이었다.


"술 금주. 어려우면 줄여보기."


"사회복지사 선생님 말씀. 명심하기."


"우리 선우, 선영이 만날 수 있다."


"할 수 있다."


마지막 글을 끝으로 아무런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술병을 하나 더 열었다.


"지랄하네."


쓴웃음을 지으며 하율은 술을 다시 들이켰다. 그 예전이 떠올랐다. 사업 실패 후 재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한번 무너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보 할 수 있어요. 나도 도울게요."

처음에 그렇게 힘을 주던 아내였다. 하지만 연거푸 계속되는 실패에 하율은 술독에 빠져 살았다.


"여보. 술 좀 그만 먹어요. 제발....."


아내가 애원하듯 간절히 빌어봤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율은 더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네가 내 술 먹는데 보태줬어? 어? 돈이나 벌어와!"


그리고 결국에는 폭력까지. 참다못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하율은 그렇게 홀로 남았다. 술은 술을 불렀고, 원래 그렇지 않던 본성도 포악하게 변해갔다. 결국 수급자가 되었고,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빌어먹게 되었다.


아무것도 일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술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면 술에 취해 잠들었다. 나아지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이미 길들여진 생활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수급비만 기다리고, 수급비가 나오면 술을 사는데 돈을 다 써버렸다. 돈이 없고, 필요한 게 있으면 동행정복지센터에 가서 행패를 부리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던 그가 등급제가 생긴 이후로 잠잠해져서 그저 집에만 있을 뿐이었다.


"하..."


술을 들이켜던 그는 영영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다.


"체내 알코올농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음주를 멈추십시오."


워치의 알림음이 울렸다. 전혀 개의치 않고 그는 계속해서 술을 셨다.

"위험합니다. 멈추십시오."


"닥쳐! 닥치라고!"


술기운이 가득 오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무리 소리쳐도, 이 상황은 변하는 건 없었다. 그저 외칠뿐이었다.

"나도. 변하고 싶었어."


그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술기운에 또다시 잠이 들고 있었다. 그렇게 잠이 들던 순간.

"김하율 씨 계세요.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왔습니다."


"김하율 씨. 계세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현의 목소리였다.


하율의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술기운에 뻗은 눈이 문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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