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상담
햇빛도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뚫지 못해 흐렸다. 임대주택빌라 단지 너저분한 골목길에는 쓰레기가 바람에 굴러다녔다. 과거에는 예뻤을 벽화는 이미 색이 바래 빛을 잃었고, 관리가 안되어 금이가 있었다. 누군가 시작했을 낙서들로 뒤덮인 벽은 지저분하게 변해 흉물로 변했다. 생기를 잃은 사람들과 동네, 우울함이 거리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모두 허름한 차림으로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녔다. 사회복지 선별관인 주현과 지우를 보고는 자연스럽게 피했다.
"안녕하세요."
주현이 자연스럽게 다가가려 했지만, 사람들은 인사를 대충 하거나 아예 길을 돌아서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굳이 하지 마. 어차피 저들한테 우린 저승사자나 다름없으니까."
차갑고도 무심한 말투로 지우는 태블릿을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 입직한 지 1년도 안된 주현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얘기였다. 지우가 민원인에게 냉담한 것도, 사람들이 선별관을 이렇게 대하는 것도,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주현은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예전에야 우리가 후원 물품 주니까, 콩고물 떨어질 거 있나 하고 왔겠지만, 이젠 우린 두려움의 대상인거지."
대수롭지 않게 다음 방문 가정 리스트를 눈으로 읽으며 지우가 말했다. 명단 확인을 끝낸 지우가 태블릿을 주현에게 넘겼다.
"김하율 씨 차례네."
태블릿을 받아 든 주현은 다음 대상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기억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지우가 주현의 어깨를 치고는 앞장서서 걸으며 말했다.
"주사님."
자꾸 신경 쓰이는 첫 대상자. 김하율 씨 이름을 보자마자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응?"
"진심으로 그를 대한다면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한번 해봐."
지우는 그저 웃어넘겼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현은 김하율의 빌라로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
"김하율 씨 계세요.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주현이 하율의 빌라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초인종은 여전히 고치지 않은 상태였다.
"김하율 씨 계세요?"
한참을 두드린 끝에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방 안에서 둔탁한 걸음소리가 들렸다. 걸쇠가 철컥하고 풀리고, 문이 조금 열렸다. 얼굴만 내밀수 있을 만큼. 그 좁은 틈으로 새어 나온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주현의 코를 제대로 찔렀다. 마스크를 쓴 상태였지만, 그 냄새를 막을 수는 없었다.
언제 씻었는지 수염이 덥수룩하게 지저분하게 기른 하율이 얼굴을 내밀었다. 붉게 충혈된 눈과 누런니, 숨 쉴 때마다 알코올의 강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뭐요."
신경질적인 태도로 하율이 강하게 쏘아붙였다.
"알코올 농도가 매우 높습니다."
하율의 워치에서 강한 어조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씨발 것."
하율은 성가시다는 듯이 워치를 내려치려다 주현을 보고 멈췄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신상에 좋지 않다는 걸 짧은 시간에 깨달은 것 같았다.
"김하율 씨, 알코올 치료 교육을 미수강 하셔서 확인차 방문했습니다."
뒤에서 지우가 사무적으로 고지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시면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주현의 말에 하율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뒤에서 듣고 있던 지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마를 짚었다.
"뭔데. 그냥 말해."
하율의 탁한 목소리에 금이 간 것 같았다.
"잠시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적대적인 하율의 태도에 주현은 당황한 티를 숨길수가 없었다.
"그래? 그럼 들어와 보던가!"
술에 취한 하율이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활짝 열리자 더 심한 냄새가 몰아치듯 쏟아져 나왔다. 곰팡이 냄새, 술냄새, 음식물 썩은 내 등 각종 온갖 냄새가 섞인 악취가 한순간에 뿜어져 나왔다.
술을 많이 먹어서 비쩍 마른 하율의 팔과 다리, 볼품없이 마른 피부가 죽은 뼈에 겨우 붙어있는 것만 같았다. 누렇게 변색된 티와 무슨 자국일지도 모를 반바지. 주현은 순간 구역질이 나올 뻔했지만 애써 참았다.
"못 들어올 거면서 객기 부리고 지랄이야. 내가 이렇게 살아! 알아?"
하율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 때문이었을까, 큰소리로 소리 내는 게 답답한 현실을 해소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처지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 그럼 잠시 앉아도 괜찮을까요?"
주현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지우가 보고 있었으니까, 더더욱 물러 설 수 없었다. 사람은 진심으로 다가가면 변한다는 걸. 그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저 체크만 하는 것보단 변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면 달라질 테니까.'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지우는 흥미로운 눈으로 주현과 하율의 대화를 들었다.
"허. 어이가 없네. 여기 냄새나잖아. 보고도 모르겠어?"
그의 얼굴에 여럿 감정이 드리웠다 사라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과의 대화에, 반가움, 화남, 슬픔, 즐거움. 결국은 체념이었다.
"이게 내가 사는 꼴이야. 그게 다야. 나는 곧 사라질 테니까."
체념 끝에 분노를 담아 하율이 소리쳤다.
"일 봤으면 가. 더 이상 할 얘기 없어."
하율에 강하게 문을 닫았다. 적막한 빌라 복도 안에 문 닫히는 소리가 세게 울렸다. 주현은 살짝 뒤로 물러나 놀란 가슴을 달랬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는 그래도 대화가 가능했는데.'
술에 만취한 상태인 하율은 지난번과 만났을 때와 다르게 인사불성이었다.
'저분도 한때는 멀쩡한 가장이었어. 무너지고 나서.....'
시스템에 적혀 있던 상담기록들, 동료들이 말해줬던 말들. 주현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에 대해 주현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함께 해보자고는 말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달라질 수 있다는 모든 말들을 주현은 그저 마음속에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강경한 그의 태도에 주현은 그대로 말을 멈춰야 했다. 그건 그저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일 뿐이었고, 눈앞에 현실을 그와 달랐다.
닫힌 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고요했다.
"가자."
지우가 그 적막을 깼다.
"이제 배우는 단계니까 그럴 수 있어."
주현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지우는 먼저 반지하 계단을 올라섰다. 입술을 깨물며 주현은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지우주사님의 말이 맞았던 걸까. 괜한 짓을 한 걸까라는 생각이 잠깐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괜한 생각이라고, 애써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주현은 알고 있었다.
주현은 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꺼냈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면.'
명함을 문틈에 끼운 주현은 문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언제든지 들어드릴게요."
그 말과 함께 주현이 그곳을 나오자 센서등이 꺼지며 어둠이 찾아왔다. 주현이 뒤돌아 본 그곳에는 어둠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
벽에 기대어 앉은 하율은 멍하니 바닥에 놓인 명함을 바라보았다. 소주병과 나란히 놓인 명함에는 주현의 이름과 연락처가 쓰여있었다.
"하."
반쯤 감긴 것 같이 졸음 가득한 눈으로 명함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이상하게 더 이상 술이 당기지 않았다. 술병에 반쯤 술이 남아있었지만, 당장이라도 목안에 그것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았지만, 하율은 그러지 않았다. 나란히 놓여있는 명함에 온 신경이 쏠려있었다.
"이게 뭐라고."
술기운에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명함을 들어 올렸다. 하얀 명함이 살포시 들어오는 햇빛에 비춰 반짝거렸다.
"하늘동 행정복지센터 이주현 주무관."
정갈하면서 선명하게 찍힌 글자. 하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상한 울렁거림. 술기운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일렁임이었다.
"신경 쓰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