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그리고 의심
흐린 하늘에 해가 뉘엿뉘엿 졌다. 미세먼지사이로 붉은빛이 삐져나왔다. 거리에는 차가 막히는지 가득했다. 사람들도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로 복귀하는 차량 안에서 지우는 조수석에 앉아 태블릿으로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다. 자율운전 운전석에 앉은 주현은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정리하려 했지만, 이내 멈추고 앞을 응시했다. 슬며시 지우의 눈치를 살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업무를 하면서 지우가 주현을 보지 않고 말했다.
"주사님. 김하율씨요."
주현이 조심스럽게 이름을 꺼냈다. 지우는 예상 했는지 피식 웃고는 태블릿을 끄고 주현을 보았다.
"어떤 게 궁금해."
강하고 힘 있는 눈동자가 주현에게 다가와 꽂혔다. 주현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분 어떠셨어요? 주사님께서 기억하시는 그분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 한마디로 진상이었지. 굉장히."
지우가 가볍게 던지자 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주사님들이 말했던 것처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상담 내용에도 거의 대부분이 동행정복지센터에서 진상을 피우고 소란을 피웠던 내용들이었으니까.
"주사님이 직접 겪었던 얘기가 궁금해요."
주현의 말에 지우는 과거를 떠올렸다. 김하율씨와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는 뇌리에 그 순간을 박아 넣은 그날을.
**
20일 기초생활수급자의 수급비가 나오는 아침이었다. 9시 전부터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그 사람이 이렇게 일찍부터 나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원래는 술에 취해서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으니까.
"어?.. 왜...... 왔지."
문 안으로 들어온 익숙한 실루엣. 김하율을 곁눈질로 알아채고는 동료 주무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왜요?"
어리둥절한 지우는 그 주무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류선별정책이 있기 전. 김하율은 동행정복지센터의 진상 중의 핵진상이었다. 그가 들어온 순간부터 민원대에 앉은 주무관부터, 뒤에 있는 팀장님까지 모두가 무슨 사고를 치지 않을까 긴장하며 바라보았다. 지우는 그런 그를 처음 보는 거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묘하게 달라지 분위기를 적응하지 못했다.
걸어오기만 했는데도 역하게 풍겨지는 술냄새와 살짝 풀려서 초점이 나간 눈동자,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그 모습은 모두가 피하고 싶은 대상 중 하나였다. 김하율은 비틀거리면서 걸어와서 민원대에 몸을 비스듬하게 기대고는 크게 소리쳤다.
"아니 돈이 왜 적어!"
그리고는 통장을 지우의 앞 민원대에 집어던졌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지우는 자신 앞에 서 있는 하율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화를 온몸으로 내뿜으며 서서 성을 내었다.
"아, 선생님. 일단 신분증을."
지우가 통장을 가져가려는 순간 앞에 있는 플라스틱 보호벽을 세게 치며 윽박질렀다.
"아니! 나 몰라? 돈이 안 들어왔다고!"
큰 소리에 모든 민원인과 직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잔뜩 몸이 움츠려진 지우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응대를 이어갔다.
"선생님 일단 신분증을 주셔야 저희가."
지우의 말을 끊어버리며 하율이 소리쳤다.
"김하율!"
"김하율!! 돈이 없단 말이야! 나 죽으면 책임질 거야?"
괴성을 지르며 죽일 듯이 지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우는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잡아서 이름을 확인하고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검색했다.
"아니 이래서 공무원들이 문제야! 내 세금 받아먹고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정부는 뭐 하나 진짜 개 같은 새끼들."
"돈을 제때 줘야지 너네 한번 뉴스 나오게 해 줘? 어?"
그 와중에도 김하율은 허공에다가 소리치고 있었다. 듣는 사람 없는 아우성이었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들어가자 하율의 내역이 나왔다. 수급비는 정상적으로 전송되었고, 아직 은행에서 입금을 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지우는 침을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율을 바라보았다. 통장을 든 지우는 단호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고 내뱉었다.
"선생님 입금되실 거고요. 아직 20일 오전이잖아요. 조금 더 기다리면 들어가요."
지우의 말에 하율은 더 성이 났는지 고레고레 소리 질렀다.
"아니 20일이면 당장 돈을 넣어야지! 어! 지금 20일이 된 지 몇 시간이나 지났어!"
폭력적으로 보호막을 내리치면서 위협했다.
"아직 20일 안 지났잖아요! 기다리세요. 들어갈 거예요!"
지우가 소리쳐도 하율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 나 술 사야 한다고!"
"기다리면 들어가요!"
지우는 지지 않으려 악을 썼다.
"됐고! 그리고 나 더우니까 에어컨 줘! 에어컨!"
막무가내식으로 하율이 소리치자 지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너 왜 한숨 쉬어! 어? 민원인이 우스워! 내 돈 받으면 일하라고!"
"아뇨 선생님."
지우는 애써 침착하게 말을 하려고 했다.
"뭐! 내가 왜 선생님인데! 어? 됐고, 에어컨 달라고 나 더워 죽는 거 보고 싶어? 돈도 안 주고!"
하지만 하율의 무논리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우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해졌지만,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숨이 안 쉬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 일단 돈은 기다리시고, 에어컨은 지금 관련 신청기간이 아니라서 안 돼요."
"왜 안된다고 해! 방법을 찾아야지! 그런 거 하라고 여기 있는 거잖아!"
"지금은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에어컨 관련해서 신청기간도 아니었고, 충분히 당일에 지급된다 안내했음에도 하율은 전혀 듣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해달라고!"
"저희가 나중에 에어컨 관련해서 내려오면 연락드릴게요."
지우가 애써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팀장님과 보안직원이 와서 중재하려 했지만, 그에 더 기세등등해져서 소리치고 난동을 피웠다. 민원인용 의자를 걷어차면서 민원대에 놓인 물건들을 바닥에 던졌다.
"아 당장 내놓으라고! 씨발!"
다른 민원인들의 미간이 찌푸러질 정도였다. 직원들도 긴장한 상태로 하율을 지켜보았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뭐 시발! 어!"
다른 직원들은 몰래 경찰에 신고했다.
"여기 행정복지센터인데요."
김하율은 그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사고가 나기 전에 경찰이 출동했다.
"연락 안 주기만 해 봐! 너 이름 내가 기억했어!"
술냄새를 풍기면서 김하율은 경찰에게 끌려나갔다. 끌려나가면서도 기가 살아서 객기를 부리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 남겨진 지우는 멍하니 김하율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우는 영원히 그 모습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김하율은 술에 취하면 아무 때나 나타나서 난동을 부렸다. 그곳에서 일하는 모두가 김하율이 어떤 사람인지 알 정도였다.
**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오로지 한 불빛만 켜진 사무실은 기계 돌아가는 소리 이외에 고요했다. 주현은 비추는 불빛 아래 혼자 앉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주현은 멍하니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지우가 말했던 이야기는 그대로 상담내역에 쓰여있었다. 물론 지우가 말해줬을 때 보다 좀 더 간결하긴 했지만, 상황은 명확했다.
"휴."
지우가 그렇게 차가웠던 이유들이 너무나도 납득이 갔다. 동료들이 김하율씨를 그렇게 묘사했던 이유도. 주현이 처음 본 김하율의 모습과는 다른 글들이어서. 주현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에휴."
하지만 그건 과거의 하율의 모습이었고, 어쩌면 지금은 바뀔 수도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는 동물이니까.
"생명이 달린 일이니까. 예전이랑 지금은 다르니까."
주현은 혼자 중얼거렸다. 일단 집중해야 할 건 김하율 씨를 믿고 살리는 일이었다. 이번에 음주 프로그램에 한번 더 결석을 한다면, 김하율씨는 폐기 대상자가 되어 일주일 내에 폐기될 게 뻔했다.
"어떻게든 마지막 기회로 설득해야 해."
더 이상 사람들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 주현은 질끈 눈을 감았다. 마지막 기회. 폐기를 당하는 주현의 첫 대상자가 되게 할 수 없었다.
"제발."
마저 일을 하고 다시 주현은 다음 출장 일정을 정리했다. 김하율씨와 동행해서 직접 프로그램에 갈 생각이었다.
'이렇게라도 김하율씨가 살 수 있다면.'
주현은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껐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주현을 그렇게 사무실 조명을 끄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