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어둠 속의 희망

by 슬그머니

잿빛 하늘아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건조한 바람이었다. 밖에는 황폐한 들판과 무너져가는 집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 폐가인지 알 수 없었다. 임대주택 단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빌라 쪽으로 태양시 마크가 붙은 관차가 멈춰 섰다.

"이쪽."


방호복과 마스크, 보안경을 낀 지우와 주현이 차에서 내렸다. 지우는 태블릿을 들고는 익숙하다는 듯이 오래되고 낡아서 허물어져가는 빌라 쪽을 보았다.


"302호"


태블릿으로 위치를 파악한 지우가 고개를 돌렸다. 주현도 지우가 향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오래된 건물이어서 그런지 알 수 없는 냄새가 음침하게 느껴졌다. 벽과 계단이 갈라져서 대충 땜질을 해놓은 것 같았다. 지우는 거침없이 계단을 올라서서 302호 앞에 섰다. 허름한 현관문에는 떼가 낀 302호가 적힌 푯말이 있었다. 주현은 태블릿으로 대상자의 정보를 눈으로 읽었다.


"김서하 38세 여성, 김민율 5세. 한부모 가정."


지우는 태블릿을 꺼내 스캔을 했다.


"김서하 38세 집 방문 확인되었습니다."


확인이 완료되자 지우는 초인종을 눌렀다. 청량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고 바로 문이 열렸다. 살짝 떡진 머리와 푸석푸석한 피부결, 퀭하게 내려온 다크서클을 가진 여자가 문을 열었다. 지우를 보자 눈이 조금 커졌다.


"김서하 씨. 행정복지센터입니다."


"아... 들어오세요."


지우는 사무적인 태도로 태블릿을 만지며 말했다. 여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안내했다. 빌라의 외관과는 다르게 깔끔했다. 아이 있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편이었다. 밝은 조명아래 하얀 바닥이었음에도 잡티하나 없었다.


"안녕하세요. 드릴 게 없어서..."


안으로 들어온 주현과 지우에게 서하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민율은 서하의 뒤에 숨어서 지우와 주현을 훔쳐보았다.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로 반짝거리며 낯을 가렸다. 서하는 아들 민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아닙니다. 짧게 여쭤보겠습니다."


지우는 여전히 냉랭한 말투로 태블릿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주현은 고글과 마스크를 벗고 웃으며 민율에게 손인사를 건넸다. 입을 쭈욱 내밀고, 큰 눈으로 주현을 올려다보며 민율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보았다.


"교육 참여는 다 끝내셨고."


"네. 수강 완료 했어요."


지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심각한 듯 집중한 모습에 주현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서하는 잠자코 서서 침을 삼켰다.


"일자리도.... 구하셨군요."


"네 이제 두달정도 됐어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단단한 목소리였다. 서하도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긴장되어 몸이 굳어있었다.


"이제 한달만 더 출근한다면."


주현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가 다음으로 하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알기에 주현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재심사 후 제거 대상에서 제외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탈수급 하시게 될 겁니다."


딱딱하고 무심한 말투로 지우가 안내했다. 순간 서하의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애써 울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는 없었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눈물에 놀라서 보채지도 않고 손을 뻗어 안아달라는 시늉을 했다.


"엄마아 왜 그래."


서하는 민율을 안아 들고는 흘리는 눈물을 닦았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아냐. 엄마 괜찮아. 민율아 괜찮아."


"감사합니다. 주무관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우는 애써 웃으며 눈물을 참았다. 서하는 계속해서 지우에게 연거푸 인사를 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서하와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서서 그저 서하를 바라볼 뿐이었다.


"출근 잘하시고, 지속적으로 근로하시면, 재심사 결과 통보하러 다시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우는 필요한 말만 하고는 밖으로 먼저 나왔다. 주현은 급하게 보호경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우를 따라나섰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푹 쉬세요."


보안경안으로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주현은 밖으로 나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무관님. 정말...."


주현이 나가자 아이 엄마는 아이를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현관문 밖으로 행복한 울음소리가 날 정도였다. 주현은 서둘러 지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우는 어느새 빌라 앞 관차 앞에 나가 서 있었다.


"가자. 늦었어."


"넵. 주사님."


두 사람은 관차에 타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지우는 다음 목적지를 확인하고 대상자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현에게 지우가 지나가듯이 말했다.


"모두가 저런 건 아냐. 특이케이스지. 기대하지 마."


"네?"


"특히 김하율 씨한테는 더더욱."


지우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마저 일하기 시작했다.


**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 아래 김하율의 빌라 앞 연석 위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 씨발."


하율의 손위에는 우편이 놓여있었다. 구청에서 온 우편이었다. 이미 뜯은 내용물은 교육불참 시 제거대상자로 선정된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을 읽어 내리던 뻑뻑하고 충혈된 눈은 '제거 대상'이라는 글자에서 멈춰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지들이 뭔데."


하율은 피식 웃고는 손에 쥐고 있는 종이를 구겨 버렸다.


"내가 이렇게 살겠다는데, 시민을 지들이 뭔데 죽여!"


뼛가죽밖에 남지 않은 팔로 하율은 종이를 집어던져버렸다. 힘도 없는지 종이는 하율의 발 앞에 맥없이 떨어졌다. 옆에 있는 소주병을 들어마시려 했다. 건조해 갈라진 입술 위에 차가운 병이 닿았다. 하지만 소주병에 술도 비어있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하율은 힘없이 술병을 내려놓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하... 하하하하."


이런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마른세수를 하고는 앞에 던져버렸던 종이를 주었다. 구겨진 종이 속에서 자신의 망가진 과거가 떠올랐다.


술을 끊겠다고 다짐했던 순간. 아내와 자녀들에게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렸던 순간, 어느샌가 이혼이 되어버린 그 순간. 순간들이 한 번에 하율에게 몰려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아있는 건 지금 술에 항상 취해 볼품없이 마른 김하율뿐이었다.


"씨발.... 나는 왜....."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술병을 던져버리자 유리 파편이 흩어지며 소리가 울렸다. 하율은 머리를 감싸 쥐고 중얼거렸다.


"이젠 살아야 해. 어떻게든."


**

다른 곳을 들렀다가 복귀하는 길. 창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깔려 있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주현의 얼굴을 스쳐갔다. 마지막 출장 내역을 정리하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주현이 고개를 들어 지우를 보았다.


"주사님. 오늘 서하 씨처럼 다른 분들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주현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김서하 씨 같은 사례는 100명 중 하나 있을까 말까야. 대부분은 그냥 지원금만 받아. 지원금 받을 궁리만 하지. 그리고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는 것도 망각하지. 나중에 우리가 찾아가면 그때서야 정신 차리는 거야.”

지우의 말에 주현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지우의 말이 현실적이란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 제도도 이제 20년이 되면서 정착이 돼서 많이 봐주는 편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 일단 눈앞에 보인 달콤함이 우선이거든."


"그걸 잊지 마. 주현아."


지우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주현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계속 하율과 서하 두 사람의 상황이 떠올랐다. 해내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사라진다. 하지만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창밖으로 붉은 저녁의 노을이 흘러들어왔다. 마침 대답 없는 질문처럼, 희미하게 흔들렸다. 주현은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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