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가능성
술기운에 비몽사몽 한 하율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손에 쥐어진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구겨져서 볼품 없어진 종이에 제거라는 글자는 선명하게 보였다. 주춤거리며 일어난 하율은 종이를 멍하니 보다가 자신의 손목에 있는 워치를 보았다.
“하….”
워치에는 재수강을 원하는지 여부에 대한 답이 화면에 떠있었다. 그냥 손가락을 들어서 클릭을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아주 쉬운 거였지만, 하율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뭐가 어려워서 인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걸.
하율은 누구보다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보던 하율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세먼지 사이로 지는 하늘은 오늘따라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보랏빛을 내며 구름과 미세먼지를 뚫어내며 강하게 빛을 내었다.
“씨이발”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굉장히 예쁘네.”
하율의 흐리멍덩한 눈동자 속으로 보랏빛 노을이 황홀하게 비췄다. 주름지고 세월의 풍파를 맞은 하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율의 어깨가 흔들렸다. 50대를 훌쩍 넘긴 하율은 어린아이 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잔뜩 망가져버린 얼굴을 쓰러 내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하…….”
한참을 그렇게 조용히 울던 하율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주현이 남긴 명함을 꺼내었다. 입술을 깨물고서는 명함 속 주현의 사무실 연락처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눈에는 여러 고민들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래.”
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앞에 아까 전에 그가 깬 술병조각들이 나뒹굴었다. 조심스럽게 쪼그려 앉은 그는 그 조각들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손에 피가 난지도 모르고, 그는 구겨진 공문 위에 소주병 조각들을 올려서 치우고는 집으로 들어가 테이프를 가져와 감싸서,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쓰레기장에 갖다 두었다. 항상 우울한 표정이던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편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
같은 시각 주현의 사무실.
“주현주사님은 왜 사회복지공무원이 되셨어요?”
퇴근 시간 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규 이아현주무관이 주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대충 업무를 마무리하고서 기지개를 켜던 주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서 이아현을 보았다.
“아, 저요?”
총기 넘치는 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간단했지만, 이상하게 옆자리의 지우가 신경 쓰여서인지 주현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 저는. 도와주고 싶어서요. 아현주사님은요?”
그래도 간단하게 답을 해냈다. 슬쩍 옆자리의 지우를 봤지만, 지우는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저는 나쁜 사람들 다 혼내주려고요. 사회의 악이잖아요. 쓸모없는 잉여인간들!”
주현은 말을 잃고 아현을 보았다.
“솔직히 이 일 하면서 제일 자랑스러운 게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들을 정리하는 거예요. 그 덕분에 우리가 더 깔끔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거잖아요.”
아현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지우는 그런 아현을 보며 한마디 건넸다.
“그중에 쓸모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도 우리 일이야.”
그 말에 아현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런 거 치고는 3달 동안, 갱생된 사람은 없더라고요. 다들 기회를 줘도, 그때뿐이더라고요.”
“그래도 오늘 우리 간 집은 제거대상에서 제외되긴 했어요. 곧 탈수급할 것 같아요.”
주현이 오늘 갔던 집인 김서하 씨 집에 대해서 말하자 아현의 눈이 커졌다.
“아? 진짜요? 우와 신기하다. 그래도 주사님은 저보다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 집을 보셨나 봐요. 전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글쎄. 드물 거야.”
지우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아현은 조금 더 고민하는 듯하다가 시계를 보았다. 저녁 6시 퇴근 시간이었다.
“일단 그건 나중에 하고! 모두 칼퇴하시죠!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아현은 재빠르게 컴퓨터를 끄고는 미리 싸둔 짐을 챙겨서 밖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지우는 피식 웃으며 아현을 보았다.
“내일 봐요.”
“내일 봬요!”
아현의 목소리가 멀어질 때쯤 주현은 말없이 공허한 모니터만을 바라보았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주현의 눈을 스쳤다. 아현의 말이 귓가에서 자꾸 울리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무거운 물체로 머리를 크게 떄린 것처럼 충격은 너무 커서 잔상이 남을 지경이었다.
“안 가? 오늘도 야근하게?”
지우였다. 지우가 주현의 어깨를 치자 주현이 화들짝 놀라 지우를 바라보았다. 퇴근 준비를 마친 지우는 주현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아….. 좀만 하다 가려고요.”
“요새 야근 많이 하던데. 적당히 하다가 가. 너무 에너지 쓰지 마.”
“아…. 네네. 들어가세요.”
주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우를 배웅하며 말했다. 지우는 주현의 몰골을 살피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을 나갔다. 다른 주사님들도 일찍 퇴근하고, 어두운 사무실에는 주현만이 불을 켜고 앉아있었다. 업무를 이어가던 주현은 말없이 김하율 씨의 상담기록을 또다시 읽었다. 몇 번이고 읽어봤지만, 김하율 씨를 도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진짜 주사님 말씀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심란했다. 너무 오랫동안 컴퓨터를 바라봐서일까. 충혈되고 뻑뻑한 눈을 애써 깜빡거리며 주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그 사람을 외면하지라도, 누군가 한 명이 도와준다면 사람을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아직 기회는 있으니까. 김하율 씨도 하루아침에 달라지긴 힘들 거야.”
그때 마침 주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의 전화였다.
“어 엄마.”
주현이 전화를 받자 걱정스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야근해? 요새 너무 자주 야근한다. 몸도 챙겨야지.”
“아 일이 있어서.”
“밥은? 저녁은 먹고 해야지.”
“아. 먹으려고.”
“아직 안 먹었어? 얼른 먹고 해. 몸 상한다.”
우려 섞인 엄마의 목소리에 주현은 대충 답변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 끊어.”
전화를 끊은 주현은 일을 마저 하려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맥이 끊긴 것처럼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 주현은 자리를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있었고, 가로등 불빛과 네온사인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현은 주차되어있는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를 집으로 지정하고는 의자를 젖혀 누웠다. 주현의 얼굴 위로 가로등 불빛이 연달아 지나갔다.
도시는 잠들지 않았다. 주현이 매번 출장 가는 수급자 집중 거주지역과 다르게, 주현의 집은 번화가 가장자리의 일반시민 거주촌에 있었다. 해가지면, 불빛이 없고, 사람들도 안 다녀서 언제 어떤 위협을 당할지 모르는 수급자 집중거주촌과 달리 밖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안 피곤 한가.”
의자를 살짝 올린 주현은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금 간 흔적도 없이 제때 보수를 해서 깔끔한 건물들, 쓰레기 하나 없이 정돈된 인도, 어둠이 내렸음에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할 정도로 안전한 도시. 주현은 말없이 주변을 살피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주현 님. 일어나세요.”
자율주행 자동차의 안내음성이 여러 번 울렸을까. 주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어느새 빌라 앞에 주차까지 완료되어 있었다. 주현은 비몽사몽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살폈다.
“아. 도착했구나. 지금 몇 시야.”
주현이 자동차에게 묻자 자동차가 바로 답변을 했다.
“지금은 오후 10시 30분입니다. 도착 후 40분 정도 잠드셨습니다. 얼른 집으로 복귀하시어, 숙면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AI음성 안내에 주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했다. 가방을 들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주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십시오. 바로 숙면에 들 수 있게 숙면모드 준비해 두었습니다.”
AI 어시스턴트의 목소리에 주현은 귀찮다는 듯이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기대어 누었다. 업무폰을 꺼내어 주현은 정보시스템을 살펴보았다. 여러 수급자들의 이름을 스크롤로 내리다가, 김하율 씨의 이름에서 또다시 시선이 멈췄다.
“김하율 교육미참여. 내일모레까지 미참여 시 제거.”
주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업무폰을 내려놓았다.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말 더 이상은 끝이었다. 그 순간 알림이 울렸다. 주현은 놀라서 핸드폰을 보았다.
“김하율. 교육 참여 의사 확인. 내일 오전 10시 수업 수강신청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