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그리고 낙인
알림이 울리자 하율은 몸을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알람소리에 일어난 본 건 얼마만인지. 이 변화가 하율에게는 새로웠다. 하율은 쓰레기들을 밀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도 여전히 너저분하긴 했지만, 하율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몸을 깨끗이 씻고,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손은 금단 증상으로 떨렸지만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해서 서툴었는지 베인 자리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꼬질꼬질하고, 지저분했던 그의 인상이 조금은 깔끔해졌다.
그는 서랍장 안쪽에 있던, 빛이 바랜 정장을 꺼내었다. 언제 입었는지도 모르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새 하율의 몸이 말라서 옷은 커져 있었다.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정쩡한 핏으로 하율은 현관 앞에 거울 앞에 섰다.
“하…..”
비쩍 말라서, 산송장 같은 몸. 면도를 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해서 베인 듯 상처 난 얼굴, 푸석푸석하고 잔주름이 간 피부, 퀭한 눈동자까지. 더군다나 옷은 남의 옷을 입은 듯 맞지 않았고, 셔츠는 주름이 잔뜩 가고, 목뒤 카라에는 누렇게 떼가 끼어있었다. 재킷과 바지는 햇빛에 변색되었는지 얼룩져 있었다. 하율은 자신의 몰골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이렇게 된 거지.”
더군다나 손까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술을 마시면 이 불안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율은 꾹 참고 있었다.
“가야지.”
워치에 오전 7시 30분이라는 시간이 찍혀있었다.
하율은 작은 가방을 챙겨서 구두를 꺼내 신고 밖으로 나섰다. 발끝이 닳아 해진 구두였지만, 유일한 외출용 신발이었다.
문을 열자 싸늘한 아침공기와 함께 미세먼지 섞인 하늘이 하율을 맞이했다. 태양은 벌써 하늘에 선명하게 떠있었고, 수급자 거주지역 마을은 고요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관리를 하지 않아 낡은 건물과 금이 간 담벼락, 쓰레기 흩어진 길.
하율은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걸어서 15분 거리에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가방에서 무료 교통카드를 꺼내어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수급자 주거주지역에서 도시의 중심가에 있는 치료센터까지 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10대만 운행하는 이 버스를 타야만 했다. 몇몇의 수급자들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율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서는 말없이 서서 서로가 거기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다. 적막한 공기가 사람들 사이를 감쌌다. 하율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술을 먹지 않아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하율의 몸에는 식은땀이 계속 나고 있었다.
‘이게 맞나.’
몸이 너무 불편해지자 하율은 자꾸만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서 술을 마신다면, 이런 증상을 겪지 않아도 되는 건데.
하지만 한편으로 확고했다.
변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렇게 몇 번씩 변덕이 하율을 휘감았다. 때마침 버스가 왔고, 하율이 버스 카드를 찍자 알림이 울렸다.
“삑. 복지대상자입니다.”
기계음이 울리고 버스기사 힐끗 하율을 보았다. 버스기사는 손을 들어 코를 막고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예전 같으면 소리라도 쳤겠지만, 기운 없어진 하율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멀미 때문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급자 거주지역과 다른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빌딩과 새로 포장되어 깔끔한 도로, 조금만 왔을 뿐인데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버스 안의 몇몇 사람들은 하율은 적응되지 않는지 바깥을 계속해서 살폈다. 그곳은 그가 떠나버린 곳이었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를 거부하는 세계였다.
“다음 정류장은. 다음 정류장은.”
알림음이 울리자 누군가 버스정차벨을 눌렀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하율은 자신이 내릴 정류장인 걸 급하게 깨달았다. 수급자들이 내릴 곳은 다 똑같으니까. 수급자 거주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다 그곳에서 내렸다.
“문이 닫힙니다.”
"아 뭐야. 냄새."
스쳐 지나가는 말이 칼처럼 날아와 꽂혔다. 하율이 버스에서 내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수급자인가 봐.”
“더러워.”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하율은 고개를 푹 숙였다.
예전과는 다른 도시가 온몸을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깔끔하고 정돈된 거리, 높게 뻗은 건물들, 세련된 옷과 스타일로 걸어 다니는 여유로운 사람들. 하율은 이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었다.
"어디였지."
땀이 물 흐르듯이 흘렀다. 가뜩이나 알코올 금단현상 때문인지 식은땀까지 났다.
하율은 급하게 핸드폰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넘어지고 말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하율을 힐끗 보고는 피해서 크게 돌아갔다.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경멸과 멸시의 눈초리들이 하율을 강하게 찔렀다. 하율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건물 쪽으로 뛰었다. 골목 쪽에 숨어서는 헛구역질을 했다.
"하..... 씨발....."
온몸이 무너져서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거친 숨을 내쉬고서 하율은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얼마 만에 거칠게 움직인 건지 몸이 놀란 것 같았다.
"하........ 정말."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하율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이 내려앉은 것처럼 온몸이 무거워졌다.
"출석 30분 전입니다."
때 마침 워치 알림이 울렸다. 하율은 워치를 보면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가야겠지."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그에게 차가운 곳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수급자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화려한 건물 안에 유일한 회색인간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붙어서 낯선 환경 속에 적응하려는 것 같았다.
"김하율 씨 건물 진입이 확인되었습니다."
"00 씨 건물 진입이 확인되었습니다."
"00 씨 건물 진입이 확인되었습니다."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의 워치에서 일제히 알림이 울렸다. 기괴한 음성알림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뭐야."
당황한 하율은 워치를 눌러서 껐다. 긴장한 눈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4층 404호로 입장하십시오."
"3층 302호로 입장하십시오."
"4층 401호로 입장하십시오"
또다시 일제히 알림이 울렸다. 하율의 강의실은 404호, 알 수 없는 기분에 하율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과 엘리베이터에 함께 좁은 곳에 있을 상상을 하니 순간 호흡이 가빠졌다.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정에 비상구로 달렸다. 비상구 계단에 걸터앉아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앓기 시작했다.
"살고.... 싶단 말이야.'
두근거리는 심장과 계속해서 나는 식은땀. 덜덜 떨리는 온몸. 모든 게 망가져버린 하율은 계속해서 되뇌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살아야 하니까. 살고 싶단 말이야.”
하율은 이를 악물었다.
"제발......"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났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