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깊어가는 고민

by 슬그머니

버스를 타기 위해 하율은 정류장에 섰다. 교육이 끝난 수급자들 무리가 버스정류장에 모여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수급자 무리를 피해 돌아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였지만, 이상하게 그 소리는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저 거지들한테 우리 돈 쓰는 거야?"


"세금을 저 딴 데 쓰다니 아까워."


멀리서 들려온 말이었지만 선명했다. 누군가는 하율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가뜩이나 식량도 모자란데. 왜 저런 기회를 주지?"


"그니깐 말이야."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떨구고 버스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다. 그 침묵이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수급자들이 기다리던 버스가 들어섰다. 버스는 도시의 풍경과 다르게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더러웠다. 버스운전사가 없는 도시의 자율주행버스와 다른 기사가 있는 버스. 승객들처럼 비루하고 남루해서 누가 봐도 수급자 거주구역으로 향하는 버스였다.


수급자들은 급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복지대상자입니다."


버스카드를 찍자 알림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하율은 괜히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하율도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잡았다.


잿빛하늘 속에 해는 지고 있었다. 붉은빛이 뿌옇게 흐려져서는 건물 사이로 사라졌다. 도시는 시스템으로 공기를 맑게 유지했지만, 경계를 나오는 관문을 지나자 하늘은 금세 회색빛으로 변했다. 하율은 오늘 처방을 받은 약봉지를 만지작 거렸다.


교육이 끝나고 의사와의 면담에서 처방받은 약이었다. 약을 복용한 덕분에 그나마 금단증상이 덜했다.


"할 수 있겠지."


하율은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교육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내일 또 이 거리를 올 생각에 아득했다. 사람들의 멸시와 차별을 참고 또 참을 수 있을까. 과거의 영광 같던 시절들이 떠올라서 더욱더 화가 났다. 예전 같으면 한주먹에 다 쓸어버렸을 텐데. 하율은 약봉지를 강하게 쥐었다.


'아니야 참아야 해.'


하율은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하늘동행정복지센터가 보였다. 하늘동행정복지센터의 건물에는 불이 환하게 켜졌있었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불을 꺼질 것 같지 않았다. 하율은 그때 그 명함을 떠올렸다. 자신의 집과 다르게 깨끗하고 새하얗던 주현의 명함.


'그래.... 해보자.'


하율의 공허한 눈 속에서 하늘동 행정복지센터 건물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


"주아람 씨의 상담기록은 비교적 최근이어서. 영상 기록으로 남아있으니까 한번 봐봐."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출장 다녀오면서 지우가 한 말이 생각난 주현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사무실 컴퓨터로 상담영상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현은 출장 일지를 다 적고서는 주아람의 상담 요약 영상을 재생했다.


"왜! 왜! 너희들이 뭔데!"


주아람이 괴성을 지르며 의자를 걷어찰 듯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눈물자국이 남은 그녀는 얼굴이 벌게져서 육중한 손을 들어 앞에 있는 공무원을 때리려는 듯이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내 애를 니들이 왜 데리고 가냐고! 내가 키울 수 있어! 내가 키울 거야."


"선생님. 아동학대 방임을 하셨기 때문에 아이는 일시보호시설로 이동합니다."


공무원의 차가운 음성과 함께 짧은 영상이 끝났다. 주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행정복지센터에 찾아온 주아람의 영상이었다.


"제발요. 저 이제 술도 안 마시고. 아이 키울 수 있어요."


주아람은 무릎까지 꿇고 앉아서 바닥에서 손을 미친 듯이 빌며 하소연했다.


"교육도 이수했으니. 아이 만나게 해 주시면 안 돼요. 정말 보고 싶어서 그래요."


공무원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주아람을 바라보다가 그녀를 말리며 다독였다.


"선생님. 어쩔 수가 없어요."


"다시 데려올 수 있으려면..."


주현은 영상을 멈췄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주아람 씨의 간절함이 너무나도 아파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까 전에 갔던 그 집에서 주아람 씨는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엄연히 방임이었고, 학대였다.


"하.... 진짜 반성하고 있었던 걸까."


영상 속 주아람 씨의 모습은 의지가 굳건해 보였다.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모습. 애절하게 이제는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일 이 일어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왜 또다시 돌아온 거지?"


방임으로 인해서 신고가 들어간 건 불과 2주 전의 일이었다. 자활 면접 준비, 교육 이수, 원가족 복귀를 위한 자체 회의 자료들. 모든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었고, 주아람의 의지도 강했다.


"주아람 주시현아동 원가족 복귀. 사유 : 주아람 교육 전부 이수, 자활을 위한 면접준비 중. 주아람과 주시현 모두 원가족 복귀 의사가 강하므로 회의 끝에 복귀 결정내림."


"그런데."


주현은 혼자 중얼거렸다. 갑자기 왜 저렇게 변한 건지. 주현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다른 기록들을 살피는 방법뿐.


"이건 뭐지?"


순간 주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주현은 동영상을 재생했다.

상담실로 보이는 방에 주아람이 앉아 있었고, CCTV처럼 카메라는 위에서 주아람을 비추고 있었다. 주아람은 책상에 손을 올리고 긴장한 것처럼 걸어 들어오는 지우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 부정수급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지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부정수급이요? 아니거든요."


주아람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특유에 예민한 얼굴을 하고서 지우를 노려보았다.


"부정하시기엔 증거가 많습니다."


지우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말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거든요."


주아람은 기세등등하게 배 째라는 태도로 말했다. 얼굴에 살짝 불안함이 보였지만 찰나여서 화면 속의 지우는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여기 보이는 이 계좌 속 금액을 보니 100만 원을 받으셨더군요. 이분 김성민 씨. 누구시죠?"


계좌 내역을 보자 주아람은 살짝 멈칫하고는 다시 길길이 소리쳤다.


"아 이건 잠깐 통장에 넣었다가 뺀 거예요. 그 밑에 보면 빠진 기록 있잖아요."


지우는 기록을 확인하고는 다시 말헀다.


"그렇군요. 하지만 이 김성민 씨에게 주기적으로 소액으로 돈을 받으셨던데. 그건 뭐죠?"


"그건 잠깐씩 더치페이한 거예요."


"김성민 씨와는 사귀는 사이입니까?"


"사생활이거든요?"


발끈해서는 주아람이 소리쳤다. 지우는 별 미동도 없이 다시 말했다.


"다른 주민들이 김성민 씨와 주아람 씨의 사실혼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혼임이 밝혀지면 한부모지원은 끊기게 됩니다. 그동안 받았던 지원도 환수받아야 하고요."


"누가 그래요? 우리 둘이 사실혼이라고!"


주아람은 더욱더 발끈해서 소리쳤다. 책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나 얼굴이 화면 속에서도 보일 정도로 벌게져 있었다.


"그 사실은 중요치 않습니다. 답하세요. 두 분 사실혼입니까?"


지우는 여전히 로봇처럼 말할 뿐이었다.


"아니거든요! 그냥 남자친구라고요! 남. 자. 친. 구!"


"답변 감사합니다."


지우는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정리하듯이 보면서 말했다. 주아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우에게로 걸어오려 했다.


"거기서 한 발자국 더 움직이시면 공무원 폭행죄로 즉결처벌받게 됩니다. 잘 생각하세요."


업무를 하면서 냉철하고 단호하게 고지했다. 그제야 주아람은 멈춰서 끌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소리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관계 확인 사실조사위원회에서 이 답변 참고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현은 다시 영상을 껐다.


"앞 뒤가 다른 사람이야."


지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아람은 어떤 사람일까.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도와야 하는 걸까. 단호하게 끊어야 하는 걸까.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그리고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 거야. 모르겠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주현은 모니터만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주현은 놀라서 전화를 바라보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하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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