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폭풍전야

by 슬그머니

"하늘동 찾아가는 복지팀 이주현입니다."


전화기를 들며 주현이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 쪽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찰나의 적막이 이어지다가 조심스럽게 상대가 말을 꺼냈다.


"주무관님."


하율의 떨리는 목소리가 주현에게까지 느껴졌다.


"저 김하율입니다."


뜸을 들이며 그는 어떤 말도 쉽게 내뱉지 못했다.


"네 선생님."


주현은 그를 기다려주었다. 그때 수화기 상으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느껴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울던 그는 이제야 괜찮아졌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목이 메인 목소리로 하율은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주현의 가슴에 정확히 날아와 박혔다.


"뚜. 뚜."


전화가 끊어진 소리가 났다. 주현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멍하니 수화기를 바라보았다. 하율의 먹먹한 감사인사가 자꾸만 귓속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


"고맙습니다...."


하율이 했던 말을 주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주현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어서 일에 더 이상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 바뀔 수 있어."


김하율 씨의 말이 희망이 되어 돌아왔다.


"주아람 씨도. 김하율 씨처럼. 변할 수 있을 거야."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


다음날 지우와 주현가 다른 가정을 방문하고 빌라 앞에 섰다.


"김윤석 님은 이제...."


주현이 말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사무실에서 온 전화인데요?"


주현의 말에 지우는 반신반의 하며 전화를 받으라는 시늉을 했다. 주현은 전화를 받았다.


"네 이주현입니다."


"아 주사님! 지금 들어오셔야 할 것 같아요."


아현의 목소리였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굉장히 급한 목소리였다.


"네? 무슨 일 있어요?"


"아 지금 주아람 씨가 오셔서 자기 집에 방문했던 사람들 불러달라고 하셔서요."


"주아람 씨 가요?"


주아람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지우는 주현을 보았다. 주현은 곤란한 얼굴로 지우와 눈을 맞췄다.


"네 혹시 얼마나 걸리세요?"


주현이 입으로 대충 뻥긋하자 지우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손으로 20분이라는 표시를 했다.


"20분 정도."


"가정 방문은 끝나서 일단 얼른 들어갈게요. 20분이면 될 것 같아요."


"넵넵 알겠습니다. 주사님 지금 난리라서 가능하면 빨리 와주세요."


아현이 조용히 속삭이면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운전석 쪽에 앉았다. 주현도 조수석에 급하게 앉았다. 지우는 자동 운전모두에서 수동 운전 모드로 변환한 뒤에 운전대를 잡았다.


"주아람 씨가 왜 오셨을까요?"


주현은 영문을 알 수 없는지 태블릿으로 주아람을 확인했다.


"예전에도 별일 아닌데도 와서 하소연하긴 했었어."


"그래도 보통 다른 수급자들은 잘 안 오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인구 감축 사업 이후로 행정복지센터에 올 일이 줄기도 했으니까."


지우는 액셀을 밟으며 속도를 냈다. 거침없이 차들을 추월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가서 무슨 일인지 보자."


"네네."


주현이 지우의 거친 운전 솜씨에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분인지는 몰랐는데, 약간 놀란 얼굴이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달려서 주차까지 완료한 주현과 지우는 급하게 행정복지센터 민원실 쪽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을 보자 주아람은 한달음에 달려왔다.


"저희 집에 오셨던 분들이시죠?"


그날과 다르게 술에 취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화려한 복장을 한 그녀는 어디서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명품 가방을 들고, 명품 로고가 크게 박힌 티를 입고 있었다. 화장을 찐하게 한 그녀에게서 진한 향수냄새가 풍겨왔다.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일단 상담실로 가시죠."


지우가 차갑게 물었다. 주현은 숨이 찬 지 뒤돌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니 상담실 갈 건 아니고. 사과하시죠."


주아람은 팔짱을 끼고는 지우를 스캔하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주현은 이해가 되지 않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사과요."


전혀 아무런 감정도 표출되지 않았다.


"사과해요. 저희 집에 맘대로 와서 남자친구가 저 복지대상자인 거 알았잖아요. 잘되고 있었는데! 헤어지면 어떡할 거예요! 당신 책임이니까 책임져!"


주아람이 악쓰듯이 소리쳤다. 지나가던 민원인과 안쪽 민원대에 서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주현은 처음 겪는 상황에 지우와 아람을 번갈아 보았다. 주현이 먼저 나서려고 하자 지우가 조용히 주현을 막았다.


"주아람 씨. 행정복지센터 내에서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


지우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이 주아람의 화를 더 키웠다.


"사과하라고! 너 때문에 나 헤어지면 책임질 거냐고!"


"정당한 공무집행이었습니다. 자꾸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나가주셔야 합니다."


"뭐라고! 너 이름이 뭐야! 내가 민원 넣을 거야."


주아람이 소리쳤다. 때마침 보안 실장님이 와서 주아람을 데리고 나갔다.


"이름이 뭐냐고! 아니! 너 뭐냐고 또 만나기만 해 봐!"


주아람을 끌려나가면서 소리쳤다. 주현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현은 눈치를 보며 지우를 따라 들어갔다.


"주사님.."


"괜찮아. 자주 있었던 일이라. 처음이라 놀랐겠네."


지우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주현을 걱정했다. 그동안의 수급자들과는 다르게 주아람 씨는 화가 많았다.


"원래 다들 저러긴 했었는데. 별일 아냐."


지우가 주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사무실로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에게 아현이 놀라서 달려왔다.


"우와 주사님 저런 사람 처음 봤어요. 평가에 불이익받을 수도 있는데 난리 치네요."


아현은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팀장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저렇게 소리 지르는 분 봤네. 저 사람도 대단하다. 윤주사 오늘 고생했네."


"아 괜찮아요. 팀장님. 주아람 씨 지금 아동학대 위험군이라서. 집중관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우는 대수롭지 않게 일얘기로 대화를 바꿨다.


"그래 사고 나지 않게 처리해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주현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주아람 씨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그 얼굴과 표정, 큰소리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녀도 변할 수 있을까. 김하율 씨처럼. 다시 주현은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주현아."


지우였다.


"잠깐 와봐, "


지우가 눈빛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했다. 주현은 그런 지우를 따라나섰다. 탕비실에 들어온 지우는 과자를 꺼내서 주현에게 주면서 말했다.


"너 요새 생각 많지."


과자를 받은 주현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의 눈은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 그게."


주현이 머뭇거리며 말을 못 하자 지우는 물을 따라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조심해.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마. 너도 힘들어져."


지우의 말에 주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주아람 씨도. 김하율 씨도."


"김하율 씨는..... 하지만 변하셨잖아요."


김하율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성과도 보이고 있었고, 가능성이 보였다. 그래서 주현은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글쎄. 나는 아니라고 봐. 그러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고, 에너지 쏟지 말고. 네 건강부터 챙겨. 그러다 몸 상하니까."


"네."


주현의 더 길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김하율 씨는 그래도 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길게 대화를 하고 싶진 않았다. 지우의 말에도 일리는 있으니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주현의 얼굴은 어느새 푸석푸석해져 있었고, 생기를 잃어갔다. 그래서 더더욱 주현은 답을 못했다.


"건강이 우선이다.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지우는 그렇게 던지듯이 조언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탕비실에 홀로 서서 주현은 생각에 잠겼다. 여러 생각들이 주현의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지우주사님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래도 사람을 믿어보자. 건강 챙기면서.'

그리고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집에 가야겠다."


그게 후회가 될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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