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그래도 오늘 출장은 일찍 끝났네요.”
한츰 밝아진 주현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다크서클이 내려온 눈으로 피곤해 보이던 주현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지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일찍 가서 쉬니까 이제 좀 조직도 사진 같다.”
“저 똑같지 않아요? 그 정도였어요?”
주현이 핸드폰 어두운 화면에 얼굴을 비춰보며 말했다.
“그때는 풋풋한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삶에 찌든 직장인 같아.”
“그 정도예요? 휴.”
지우가 팩폭을 날리자 주현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비상.”
그때 갑자기 두 사람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사무실 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하던 사람들은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주현도 핸드폰을 들어서 알림을 확인했다.
“무슨 일인 거지.”
처음 겪는 일에 주현은 당황한 기색에 역력했다. 갑자기 굳어진 지우는 태블릿을 열어 상황을 확인했다.
“윤주사. 이주사. 얼른 가봐.”
팀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현과 지우에게 급하게 말했다. 다른 직원들도 수군거리며 어수선했다.
“네 팀장님.”
지우가 대답을 하고는 짐을 챙겨서 앞장서 걸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해.”
“무슨 일이에요? 주사님.”
지우는 짐을 챙겨서 급하게 차 쪽으로 향했다. 주현도 급하게 그 뒤를 따르며 물었다.
“수급자가 난동을 부렸어.”
“네?”
운전석에 앉은 지우가 자동운전 모드를 끄며 운전대를 잡았다. 급하게 조수석에 탄 주현은 안전벨트를 매며 지우를 보았다.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로봇처럼 굳어있는 무표정이었다면,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었다.
“난동이라면. 저희가 담당하는 대상자가요?”
지우가 거칠게 도로 위를 내달리며 운전하기 시작했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침없이 차 사이를 피해서 목적지로 향했다.
“그래.”
입술을 깨물며, 지우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주현은 놀라서 태블릿을 켰다. 빨간 경고 표시가 울리더니 태블릿으로 현장 상황 CCTV가 보였다. 화면 속에 깨진 소주병을 들고 사람들에게 위협을 하고 있는 사람. 익숙한 실루엣. 주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는 바로 김하율 씨였다.
“주사님.”
주현이 지우를 보자 지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부터 감정 담지 마.”
그 말과 함께 차가 멈춰 섰다.
**
“다 뒤져! 썅!”
깨진 파편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날아온 파편에 맞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놀란 사람들의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한쪽에는 피를 흘리는 사람들과 급하게 도망치느라 넘어진 사람들, 그리고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몇몇이 보였다. 아수라장이었다. 날카로운 표면을 사람들에게 들이밀며 하율이 화를 밖으로 소리쳤다.
“내가. 그동안.”
비틀거리며 그가 사람들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사람들은 뒷걸음질 치며 하율을 바라보았다.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어 그를 영상에 담았다.
“내가. 얼마나.”
그가 중얼거리며 광기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 공포에 찬 얼굴, 사람들의 얼굴들이 그를 감싸고 서있었다. 오히려 후련했다. 그동안 받았던 멸시와 무시. 그 말과 표정들을 한순간에 굴복시켰다는 쾌감에 웃음이 나왔다.
“씨이이발. 니들이 내 삶을 알기나 해!”
하율 소주병을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허우적거리면서 그들을 쫓았지만, 사람들에게는 닿지는 못했다.
“내가! 내가!”
그는 울분을 밖으로 토해냈다. 사람들은 멀리 거리를 두면서도 그를 동영상으로 찍었다. 다행히 또다시 다치는 사람은 없었다. 하율은 사람들에게 향하려다가 그 자리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주저앉은 그가 소리쳤다.
“나도! 열심히 살았어! 알아? 너희들이 뭔데 나를 판단해! 나 그래도 왕년에 꽤 잘 나갔다고!”
대답 없는 외침이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외치고 소리쳤다.
“알아! 니들이 무시할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기운차게 소리치던 외침은 어느새 울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도! 살고 싶었다고!”
처연하면서도 처절하게 그는 세상에 5살 아이보다도 서럽게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그저 영상으로 찍을 뿐이었다.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그저 새로운 재미를 찾은 제삼자처럼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 그때 방호복을 입은 경찰들이 나타났다. 총을 든 경찰들은 재빠르게 달려와 김하율을 제압했다. 김하율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잡혔다.
“가만히 있어!”
그 뒤로 지우와 주현이 인파를 뚫고 나타났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주현은 땅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포박당한 하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경찰의 발에 아스팔드 바닥에 얼굴이 눌린 하율은 허망한 눈이었다. 엎드려진 상태로 수갑을 찬 상태로 몸수색을 받는 그의 눈동자는 공허했다. 그저 눈물이 볼을 따라 아스팔드로 떨어질 뿐이었다.
“김하율 ….. 체포합니다.”
어떤 말을 하는지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어디선가 온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 각종 소리들에 귀가 먹먹해졌다. 아무런 기운 없는 눈동자. 하율의 처음 보는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이 현실이 아니기를 빌었지만, 하율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든 게 산산조각 나버렸다.
“김하율 씨.”
주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공허한 눈에는 아무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현실을 깨달았다는 그 눈망울. 곧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는 알고 있었다. 전화를 통해 들려왔던 그의 희망 넘치던 말. 그 말의 주인은 이제 여기 없었다.
“끌고 가.”
수갑이 채워져서 힘없이 끌려가는 사람뿐이었다. 경찰들은 김하율을 끌고 경찰차로 향했다.
“이래서 수급자한테 지원을 해주면 안 된다니까.”
“그니까. 위험하잖아. 도와주면 뭐 해 피해만 되는데.”
김하율을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이번 기회에 자활교육센터도 없어져야 하는 거 아냐?”
“그니까 왜 안전구역에 이걸 지어서, 그냥 수급자 구역에 짓지. 도시에 저런 사람들이 들어오면 우리만 위험해진다고.”
주현은 가만히 들을 수 없었다.
“그건.”
그 순간 지우가 주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말라는 그 단호한 눈으로 주현의 손을 잡았다.
“가자. 일해야지.”
주현은 고개를 떨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과 김하율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지우의 손에 이끌려 경찰차 쪽으로 향했다. 김하율은 경찰차 뒤쪽에 태워져 있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지우는 공무원증을 들어 보이며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저희 관할 수급자입니다.”
주현은 급하게 태블릿을 꺼내어 김하율의 인적정보를 경찰에게 보였다. 경찰은 태블릿을 받아 읽어보더니 주현에게 건넸다.
“범죄를 일으켰으니, 재판정 기간이어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경찰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은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폐기 처리 건은 경찰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지우는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말했다.
“예. 수고하세요.”
“넵 수고하세요.”
지우와 경찰은 가볍게 인사했다. 경찰이 조수석에 타자 경찰차는 출발했다. 주현은 말없이 뒷좌석에 힘없이 앉아있는 하율을 눈으로 좇았다. 차가 멀어져 안 보일 때쯤. 주현은 고개를 떨궜다. 도시는 어느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그 많던 인파도 사라져 있었다.
“가자.”
지우는 그런 주현을 툭툭 치고는 앞장서 걸었다. 주현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지우의 등을 바라보았다.
“주현아. 얼른 와.”
“네.”
지우의 말에 주현은 그제야 뒤를 따랐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