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결국

by 슬그머니


똑같은 일상이었다. 칙칙한 회색 빛에 알 수 없는 악취가 나는 버스를 타고, 더러운 도로를 지나 온 세상의 빛을 흡수한 것처럼 반짝거리는 도시로 향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도시에 내린 하율은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올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 이곳은 하율을 반겨주지 않았다.


"아 수급자 더러운 새끼들."


"그래도 살려고 꼬박꼬박 오네."


"교육 센터를 왜 여기다 지어가지고. 미관 망가지게."


"어휴."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수급자들을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 거렸다. 개중에 몇몇은 코를 막기도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수급자들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로 묵묵히 교육 센터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하율도 거기 속해 있었다. 하율은 헐떡 거리며, 식은땀을 닦았다.


금주한 지 3일째. 인생 처음 오랜 기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거였다.


"오늘도 교육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교육 시작하겠습니다."


강의실에 앉아서 집중을 해보려 해도, 쉽지 않았다. 강사의 말들은 모두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다른 이야기들이 들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왜 여기에 있어야 하지 내가 왜?'


첫날 이주현 주무관과의 통화에서 다짐했지만, 그건 그때뿐 잠시였다. 하율은 또다시 외로운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 교육은 어땠어요?"


"저번보다는 좋은 것 같아요."


수업이 끝난 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흩어졌지만, 하율은 홀로 앉아있었다. 온 세상이 울렁이면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다시 시작할게요. 참석해 주세요."


강사의 말도 더 이상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율은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부표 같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다.


"하......"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이라도 이 불안을 잠재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술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 익숙한 냄새와 맛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목을 넘길 때 달게 느껴지는 그 향을 당장 느끼고 싶었다.


"후."


'참아야 한다.'


하율은 딴생각을 하면서 참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하율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오늘 할당된 강의는 모두 끝났다. 하율은 비틀거리며 강의실을 나왔다.


"아. 냄새!"


"안 씻고 다니니까. 우리가 욕먹는 게 저런 사람 때문인 거지!"


지나가던 수급자들의 소리가 들렸다. 하율을 향해하는 얘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하율의 가슴속에 지금 무언가 계속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마지막 발악인거지. 우린 저 사람이랑 달라."


"아 더러워."


하율은 꾹 참고, 얼른 건물을 나왔다. 같은 수급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취급을 받다니. 하율은 그 상황을 피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뒤지지. 돈 없으면. 왜 살려고 하지?"


그 순간 하율의 귀에 또다시 사람들의 말이 들렸다. 밖으로 나온 수급자 무리를 보고 젊은 대학생들이 한 얘기였다.


"나 같으면 죽었다. 왜 저러고 살아?"


"우리 세금만 아깝지 솔직히 젊을 때 열심히 안 살았으니까 저렇게 사는 거잖아. 패배자야. 어휴."


선명하게 하율의 귓가에 박혔다. 하율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하율의 손을 잡았다. 하율은 놀라 그곳을 바라보았다.


"저딴 얘기 듣고만 있게? 이거 마시고 잊어."


처음 보는 수급자였다. 그는 하율보다 더 더러운 상태였다. 히죽거리며 웃는 이는 다 썩어있었고, 이는 몇 개가 빠진 것 같았다. 눈은 흐리멍덩해서 어디를 보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술에 만취한 그는 술병을 들고 있었다. 히죽거리며 수급자는 술병을 내밀었다.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알잖아. 이거면 되는 거."


행색이 궁색한 수급자가 계속해서 술병을 하율에게 쥐어주려 했다. 하율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 되는 데."


하율의 손은 말과 다르게 술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하율의 손에 술병이 들려있었다. 취한 수급자는 손을 들어 술을 마시라고 종용했다.


"마셔. 마셔. 어차피 죽을 몸. 하고 싶은 거는 다하고 죽어야지."


하율은 술병을 바라보았다. 찰랑거리는 술이 흔들리고 있었다. 익숙한 알코올의 향이 느껴졌다. 하율은 침을 삼켰다.


'이걸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 하지만 이 향이 지금까지 참아온 모든 걸 깔끔하게 사라지게 해 준다라는 걸. 술병을 힘을 줘서 꽉 쥐었다.


"뭘 고민해. 어차피 우린 글렀어 곧 죽는다니까."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하율은 술병을 그 남자에게 건넸다.


"안돼. 이제 진짜 안 마실 거야. 안 마시기로 했어."


남자는 씩 웃으며 술병을 받았지만, 하율 쪽으로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정말?"


그때 마침 다시 조롱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세금만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들."


"죽어 마땅해. 왜 기회를 주는지 몰라. 그냥 쓰레기는 쓰레기 일뿐인데."


"그니까. 더러운 새끼들 다 뒤져라."


숨이 막혀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더 빨리 뛰고 있었다.


"그냥 받아."


남자는 하율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하율은 말없이 술병을 받아 들었다.


'딱. 한 모금만... 딱... 한 번만.'


그의 흐릿한 눈동자가 떨렸다. 술병을 들어 입안에 털어놓았다. 찰랑거리던 술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숨이 트이는 것만 같았지만, 그 순간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취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에 도는 것만 같았다. 떨리던 손도, 쉴 새 없이 흐르던 땀도. 이제 그런 건 없었다.


"하. 하하하."


하율이 큰소리로 웃었다. 술병을 다 비우고는 비틀거리며 소리쳤다.


"니들이 내 삶에 보태준 거 있어? 어!"


얼굴을 쓸어내리며 하율이 사람들에게 소리 질렀다.


"썅! 개새끼들. 내가 이렇게 살든 말든 뭔 상관이냐고!"


욕설을 섞어가면서 하율은 삿대질을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놀라서 뒷걸음질 치면서도,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기 시작했다.


"미친. 저게 뭐야."


"와 여기서 술 먹고 지랄이야."


몇몇은 하율을 향해 욕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율에게는 그저 그동안 받았던 억울함과 울분을 내뿜어야 했다. 그게 누구든.


"씨발! 니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고! 내가 어! 왕년에 그래도!"


하율은 비틀거리며 그 사람들에게로 소리치며 걸어갔다. 사람들은 구경을 하면서도 뒤로 물러났다.


"개새끼들!"


쾅!


하율이 비틀거리며 술병을 바닥에 내리쳤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순간 주위의 정적이 휩싸였다. 날카로운 술병 조각을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겨누었다.


"다 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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