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휴식

by 슬그머니


동료들과 팀장님의 배려로 3일 정도 휴가를 낸 주현은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부러 방에 불을 켜지 않았다. 암막커튼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새어 들어와 어둠 가득한 방안을 밝혔다. 얼마 만에 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

깊은 한숨을 푹 내쉰 그녀의 등은 굽어있었다. 힘없이 그녀는 커튼 사이 세어 들어오는 빛의 실마리를 응시했다. 찬란하게 흐르는 빛들 사이로 먼지가 두둥실 떠다녔다. 평온하다 못해 고요했다.

"수첩."

탁자에 널브러진 옷가지 옆에 가방에 툭 튀어나와 있는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김하율의 흔적. 그때 그의 집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주현은 수첩에 손을 뻗어 벽에 기대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집에서 잠깐 훑어봤었지만, 천천히 정독하는 건 처음이었다.

"N 년 N월 N일 술을 그만 마셔야 한다."

다음장을 넘겼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다. 그러려면 다시 재기해야 한다."

또 다음장에도 내용이 있었다.

"할 수 있다."

수첩에는 휘갈겨진 글씨체의 할 수 있다는 글들이 많이 쓰여있었다. 날짜의 간격은 제멋대로였지만, 할 수 있다는 내용은 가득했다.

주현은 말없이 수첩을 덮고 몸에 힘을 빼고 누었다. 하율의 삶의 흔적들이 무겁게 주현을 짓눌렀다. 그와 마지막에 눈이 마주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텅 비어버린 공허한 눈. 수첩에 적힌 의지와는 다른 얼굴.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은 표정. 주현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지우의 마지막 말도 떠올랐다.

"자립. 선택. 모두 그 사람들의 선택. 원하면 피할 수 있었던."

깊이 박혀있던 말이 흘러내렸다. 여러 생각들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디가 어디까지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주현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태블릿을 들어 다시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태블릿의 강한 빛이 주현의 눈을 강하게 찔렀다. 하지만 주현의 개의치 않았다.

김하율의 삶. 무엇을 놓친 건지 주현은 알고 싶었다. 바뀌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왜 바뀌지 못했을까. 아무리 읽어봐도 주현은 알 수 없었다.

"그럼. 주아람 씨는."

주아람 씨는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다 받고 있었고, 언제든지 수급자를 벗어날 수 있는 나이였다. 물론 몸이 좋지 않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충분했다. 주아람 씨의 이력을 보던 주현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도대체 다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목숨이 달린 일이었을 텐데."

"지금 당장 나라에서 돈과 생활을 지원해 주더라도 계속해서 불안했을 텐데."

아무리 봐도 주현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복지 지원이 사람을 길들인 걸까. 편하게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생활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하."

한숨을 푹 내쉰 주현은 아무런 힘을 낼 수 없었다. 자신이 알던 것들이 무너져가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을 텐데."

이전에 탈수급을 벗어난 사람처럼 아예 가능성은 없을 텐데. 하지만 김하율 씨와 주아람 씨. 그 두 사람은 결국 끝을 알았지만 그곳을 향해 걸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침대에 힘없이 누운 주현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주현은 힘을 낼 수가 없었다.

"민아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사회복지 공무원이라는 목표를 만들어준 민아. 민아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현은 대답 없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답을 본인이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모르겠어."

주현은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았다. 그동안 쉽사리 잠들지 못했던 깊은 잠 속으로 파고들었다.

**

"주현주사님이 쉬시니까. 야근하는 사람이 없네요."

다 같이 사무실을 나서며 아현이 말했다. 지우는 말없이 주현의 자리를 보았다. 항상 커피를 마시며 퀭한 눈으로 사무실을 지키던 주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지우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주현이도 잠자야지. 그러다 쓰러지니까 이번 기회에 쉬면 좋고."

"그렇긴 해요. 얼른 저희도 집에 가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직원들이 발걸음을 서두르며 밖으로 나섰다. 지우도 차에 올라타서 태블릿을 켰다. 자동차는 자율 운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는 길에 웬만해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주시현."

일에 감정을 담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 잔상처럼 주아람 씨가 경찰에 끌려가던 날. 그날이 선명했다. 놀라서 울음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보이던 그 아이. 보통이라면 아이는 일주일 만에 제거될 예정이었다. 수 없이 해온 일이었고, 감정을 덜어내는 법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리가 났을까."

지우의 손끝이 떨렸다. 태블릿을 터치하는 그 손에서 그녀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로딩되던 화면에는 그녀가 원하던 결과가 들어있었다.

"시설 입소완료."

지우는 안도감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두근거리는 그녀의 심장을 잡으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어 주현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려다 순간 멈췄다.

"아."

주현의 이름을 보며 지우는 입술을 물었다.

"쉬고 있는 애한테 전화해도 되나."

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바깥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 가로등들이 빛을 내고 있었고, 창밖으로 불빛이 열 맞춰 지나갔다. 멍하니 바깥을 보던 지우는 고민 하던 끝에 전화를 다시 들었다. 통화연결음이 조용히 울렸다.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보세요."

잠에서 깬 주현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 미안 잤어?"

"아 괜찮아요 주사님. 어떤 거 때문에 전화하셨어요?"

주현은 애써 괜챃은 척했지만 목소리에서 잠이 묻어 나왔다. 미안함에 지우는 머뭇거리며 뜸을 들였다.

"아 그게....."

잠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지우가 드디어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네네 말씀하세요."

"좋은 소식이야."

"네?"

주현의 짧은 대답에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주아람 씨 자녀 주시현 기억하지."

"네네."

시현의 이름이 나오자 주현의 목소리가 좀 더 또렷해졌다.

"시설 입소 했어. 이제 제거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지우가 한숨 들이마시고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말 끝에는 침묵이 있었다. 지우는 아무런 반응이 들려오지 않자 살짝 당황했다.

"........"

그저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지우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현아?"

"........."

한참을 주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숨만 내쉬었다.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숨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주현아 괜찮아?"

당황스러운 지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주사님.... 정말..... 정말...."

주현은 울먹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점점 발음이 어눌해져 갔다. 전화를 잡고 있는 지우의 손이 떨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명확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울던 주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우 진정한 것 같았다. 지우는 말없이 그런 주현을 기다려주었다.

"괜찮은 거야?"

"네. 주사님. 저 이제 괜찮아요."

"많이 놀랐지."

"주사님 정말 감사해요. 주사님 덕분에 이제. 확실해졌어요."

"응?"

"감사합니다. 알 것 같아요."

주현은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어갔다.

"뭐가?"

"저. 이번 휴가 잘 쉬고. 건강하게 복귀할게요. 감사해요 주사님."

"어어. 그래. 알았어. 그럼 푹 쉬어."

얼떨결에 전화를 끝낸 지우는 말없이 핸드폰을 보았다. 주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지우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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