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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Jul 30. 2017

22.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는 말

산행 6일째, 간밤에 모두 씻지도 못하고, 살짝 젖은 채로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잔 상태라 모두 초췌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점점 상황은 열악해지고, 체력도 점점 딸리고.... 그래도 참...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심지어 걷는 것도 따로따로지만,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힘이 된다. 지치면 다독 거려 주고,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기운도 불어넣어 주고, 안 보이면 기다려주고,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 

네팔 사람들이 먹는 구릉빵, 튀긴 빵인데 특별한 맛은 잘 모르겠다. 허기를 달랜다는 생각으로 핫초코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웬만하면 마차푸차레에서 1박을 하고, ABC는 그냥 들렀다 오라고들 권유를 했다. 2920m에서 4200m까지 고도 차이가 많기 때문에 혹시 모를 고산병 때문이다. 가는 길에 만나진 한국인 다섯 명과 가이드 세 명은 무언 중에 이미 한 팀이 되어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ABC까지 모두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7시간 강행군이다.

정말 모자 쓰기 싫어하는데, 머리에 열을 지키려면 방법이 없다. 머리에서 나가는 열이 30%라니. 경험자들이 하는 얘기는 들어야 옳다. 겨울 재킷은 가능하면 가벼우면서 따듯한 것으로 마련하는 게 좋다.

다행히 어제 오던 비는 그치고 날이 개이고 있다. 날씨 운이 정말 좋은 편이다. 

산 위에 걸쳐 있는 안개와 폭포가 엉켜서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보고 있으면 언제 가나 싶은데,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훌쩍 먼 곳에 가 있다. 

두 시간 반쯤 걸었을까? 다우랠리(3230m)에 도착. 

오르막 길만 걸었으니 속도 내기도 어렵고, 앞서 가시던 분들이 핫초코를 마시며 기다려 주신다. 물론 내가 도착하면 바로 다시 출발. 

가다가 쉬는 횟수가 잦아진다. 정말이지 카메라고 뭐고 다 벗어 버리고 싶은 심정인데, 저 멀리 흰 눈 쌓인 산을 보면 뭐에 홀린 사람처럼 다시 출발을 한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모디콜라 강. 얼마의 역사를 품고 살았던 것이냐?

모디콜라 강이 흐르는  이 협곡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앞으로 평생 다시 못 볼 풍경이라 생각하면 다리의 무거움은 잊고 감탄사만 흘러나오게 된다. 

아, 다시 오르막이군. 이 계단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그림자도 힘들어 보인다. 한 숨을 푹 내 쉬고, 심호흡을 한 뒤 층계를 오르기 시작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층계를 오를 땐 그냥 땅만 보고 올라간다. 멀리 가는 길일수록 바로 앞을 보고 걷는 게 중요하다. 심리적으로 미리 지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마침내 층계 끝까지 올라와 온 길을 뒤돌아 본다. 걸을 때 보는 모습과, 지나온 다음의 모습과 느낌이 다르다. 자신이 그곳에 있을 땐, 어떤 길인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는 말. 실감된다.

힘든데 기분이 좋다. 저 길들을 모두 내 발로 걸어왔단 말이지?

히말라야 로지로부터 다섯 시간 반을 걸어 도착한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우리가 점심을 하기로 한 곳은 그곳에서 좀 더 걸어야 했다. 

목적지가 보이니 배도 더 고픈 것 같고, 가도 가도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다.  

꿈처럼 도착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우리보다 먼저 이 곳에 있던 한 가족을 만났다. 해발 3730m. 저 꼬마들도 나처럼 모두 제 발로 걸어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트레킹 중 만난 가장 어린아이들이었다. 각자 그들의 짐이 있을 테고. 가이드도 없이 저렇게 가족이 모두 함께 올 수 있는 용기, 부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아이들의 엄마는 고산 증상이 있는지 잠깐 누워 있기도 했으나, 아이들 둘은 정말 씩씩하게 다니더군. 설사 훗날 기억이 나지 않을지라도 그들에겐 살아갈 힘의 불씨 같은 시간이 되었으리라. 

정작 마차푸차레에 도착하니 마차푸차레 꼭대기는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우리가 가야 할 고지 안나푸르나만 보인다. 아이러니다. 그 안에 있을 땐 그 전체 모습을 알 수가 없고, 그곳에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 내면을 알 수가 없다. 

이쯤 오면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중요하지 않다. 먹고 배탈이 나지 않을 음식이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날씨가 좋아 핫초코를 마시며 햇살을 즐기고 있는 것도 잠깐. 

구름이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발아래 구름이 있다고 내가 신선이 아니란 걸 직시해야 한다. 구름이 몰려오면 곧 비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있다.

자! 다시 올라가 볼까? 세 시간만 더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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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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