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해주세요. 딱 한번만요. 다시는 안할께요." 오늘도 수업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벌써 학부모에게 불만 전화를 받은게 이번 달만 세 번째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숙제는 하지 않고 페이스북에 매달려 산다는 것이다.
어느 날 도저히 그 꼴을 참지 못한 한 학부모가 강제로 아이의 폰을 뺏아 살펴본게 발단이었다. 참가한 모든 아이들이 한 수학 학원의 친구들이었다. '오늘 쌤 너무 시크하더라.' '너도 그랬어. 나도 나도 리얼!! 완정 사기캐ㅠㅠㅠㅠ' 난리도 아니었다. 공부하라고 학원 보냈더니 이상한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게 아닌가! 이 소식이 학원장에게 전달된 것이다. 전달이 아니라 항의였고 수강료 환불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말은 아이를 다른 학원에 보내겠다는 말이 아닌가. 지금 학원 건물에만 벌써 2개의 수학, 과학 전문학원이 들어와 있는데 말이다.
"선생님, 물론 학부모의 말만 믿을 수 없다는 것 압니다만, 벌써 3번 째고 올해만 해도...... 진짜 전화만 오면 가슴이 출렁거려요. 저희도 장사잖아요. 솔직히 우리 교육자는 아니잖아요. 돈을 벌어야 선생님 월급도 주고 월세도 내는데 잘 아시잖아요."
"네, 죄송합니다."
"어쩔 수가 없네요. 요번 달까지만 해주세요."
"......"
"그렇게 알고 있을께요. 바빠요. 학부모들에게 상담 전화도 하고 해야 해서 나가 보세요."
그렇다. 어제 일이었다. 중3수업이 시작 되는 오후 4시 직전 원장의 연락을 받고 찾아가 들은 일이었다. 오늘이 12월 3일 시간은 아직 남았지만 마음은 벌써 1월달에 가 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알려지고 바빴던 지난 몇 개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았다. 대치동의 학원이 몰려있는 한 수학 학원에서 시작한 강사 생활은 거의 3년을 채우고 있었다. 올해 6월까진 그냥 평범한 강사였다. 하지만 1학기 기말고사 시험에서 자신이 예상했던 문제가 터지자 난리가 나고 게다가 곱상한 외모까지 더해진 결과 학원에서의 자신의 위상은 거의 원장급이 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근처 대형학원에서 거액의 스카웃 제의가 오갔다.
어제 방을 나서는 데 원장이 한 한마디가 불편했다.
"선생님, 우리가 광고해서 많이 커셨잖아요. 혹시 근처에서 일하시지는 않겠죠. 계약서에도 있는 말이니까, 부탁드리는 데 지켜주세요. 그리고 참 아이들에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만둔다는 그런 말, 잘 아시죠."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미 나의 대답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제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야. 근처에서 하든말든 네가 어떻게 하겠다고.'
학원 건물 주차장에 있던 벤츠 S가 번쩍인다.
'어서오세요, 주인님'이라고 하듯.
건물을 빠져 나온 세단은 새벽 12시가 넘은 자유로를 따라 위로 향하고 그의 눈동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1시, 2시, 그리고 현재 새벽 3시 차는 아직도 달리고 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자유로를 유턴해 다시 서울로 가고 있다.
앞에 경부고속도를 입구 표시가 보인다. 한남대교을 지나 부산 쪽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간에 빠지면 다시 강남인데,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냥 직진하고 있다.
'수면제라도 먹고 자야겠다.' 생각이 든다.
'이 달 말까지는 근무를 해야 하니까.'
하지만 대전 표시판이 보인다. 그리고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자신도 모르게 강원도로 가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힘이 이끄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