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Oct 28. 2022

혼자라서 좋은 점

한주가 언제 끝날까, 생각이 드는 수요일이 되면 엄마가 없이 성당 성가대 연습 활동을 하러 가야 하는 날이 온다. 엄마는 나를 데려다주고 밖에서 기다리거나 집에 갔다 다시 데리러 오신다. 내가 다른 누군가를 만날 때 엄마가 없이 혼자인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느지막한 저녁시간, 넓은 성당 안, 이층에 자리한 성가대 자리만 밝은 빛을 내며 여러 음성이 따뜻한 하모니를 만들며 공허했던 공간에 울려 퍼진다. 온전히 내가 스스로 혼자가 되어있던 시간에 나는 여러 사람들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한 시간 반쯤 지나면 그날의 성가대 연습은 끝이 난다. 대부분 직장인으로 구성된 성가대는 저녁을 먹고 오지 못한 분들이 많아 연습이 끝나면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늦은 저녁 혹은 야식을 먹기 위한 자리가 종종 만들어졌다. 그런 자리가 생겨도 나는 끝인사를 마치고 데리러 온 엄마를 따라나선다. 누군가와 어울린다는 건 나에게 그만큼의 위험부담이 생긴다는 것이다. 언제나 위험한 세상 밖을 피해 나는 혼자만의 세상으로 들어오기를 택했다. 하지만 엄마는 위험은 알지만 혼자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 내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덧붙여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친구에게 “나는 혼자가 편해”라고 말했었다.

그러니 그 친구는 나에게 “함께 있어보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하고 말했다.


 조조 모예스 작가의 Me Before You의 소설 중에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 환자가 된 젊은 사업가 남자 주인공이 했던 말이 있다. 과거 자신의 자유롭고 다양했던 인생을 경험해 보았기에 휠체어에 실린 몸으로 규제받는 현재 더욱 불행함을 느낀다고,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의 말처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경험해본 것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의 차이는 크다. 알지 못한 세상은 뭐가 좋은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부럽지도 않다. 우물 안 개구리가 자기의 세상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제일 잘난 줄 아는 이유와 같았다. 그들의 말에 동의는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몰라 혼자가 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과 성향이 다른 것처럼 나의 조금은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준 성격이란 걸 완전히 부인할 순 없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나는 본래 성향 자체가 혼자임을 좋아하는 것이다. 요즘은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1인 가구 시대가 열렸다. 그만큼 이제는 둘보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졌고, 오히려 여럿보단 혼자인 게 편안하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일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몇 년째 인기를 끌고 있겠는가. 


 나만의 세상에서 나가는 순간 고요함을 잃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들이 나의 조용했던 세상을 흔드는 기분이 든다. 혼자 있을 때 나를 에워싸는 차분한 분위기가 주는 고요함 덕분에 나직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 밥 먹을 때 달그락거리는 젓가락 소리, 찻잔에 쪼르륵거리며 떨어지는 찻물 소리, 책을 넘길 때 나는 사락거림, 느지막한 오후 일어나서 거실을 돌아다니는 강아지의 똑각거리는 발소리. 혼자만의 시간에 들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혼자라서 느끼는 일상의 행복은 다만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고요함뿐이 아니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어서 좋은 것들이 있다.


하나, 나는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좋다. 


 병원에서 지낼 때가 많은 나는 특별하게 다인실 자리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주로 다인실에 입원을 한다. 다인실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데 식사시간에 맞춰 밥이 나오면 안타깝게도 혼자 먹지 못하는 환자들도 많은 편이다. 누워서 떠주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음식을 먹고 혼자서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혼밥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둘, 혼자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좋다.


 내 의지대로 싸고, 씻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수술을 하고 나면 꼼짝없이 누워있기를 몇 달. 그동안 자연스러운 배출 현상도 씻는 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수술 즉후에는 몸에 삽관되어 있는 소변 줄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소변은 빠져나가지만 며칠이 지나면 그마저도 제거가 된다. 물을 마시지 않아도 꾸준히 줄을 타고 들어오는 링거액 덕분에 소변이 수시로 마렵다. 수술 후라면 빠른 회복을 해야 된다며 입맛이 없어도 엄마가 주는 음식들을 많이 먹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침대에서 이뤄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태어나서 기억에 없는 영유아 시기를 제외하고 누워서 볼일을 보는 일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누군가 상상해 보았다면 상상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수술 즉후 엄마, 아빠에게 의지해서 몇 달씩 보내고 나면 부모님보다는 아니겠지만 내 몸도 마음도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혼자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때부터 나는 자유로움을 얻는다.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참지 않고, 머리 감고 싶을 때 감을 수 있는 온전히 혼자 하는 시간, 혼자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이 주는 소중함이다.


셋, 혼자 집에 있을 수 있어서 좋다.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건 어디가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가 자유로워지는 시간이자 내가 자유로워지는 시간. 아프지 않기에 우리들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난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내가 혼자서 온전히 무엇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오늘에 감사한다. 


나에게 혼자라는 의미는 단순히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무탈하게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내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괜찮아, 모든 혼자서 할 수 있는 내가 있기에 괜찮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재미없겠다는 둥, 심심할 것 같다는 둥 말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고요한 즐거움을 나는 안다. 함께하기 위해 모르는 이야기에 웃음 짓고, 어울리기 위해 다른 이의 눈치 보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울까? 늘 부쩍 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권해보고 싶은 시간 있다. 창을 통해 밝은 햇살이 내려쬐는 거실에 앉아 노래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햇살 너머 보이는 창밖 풍경을 보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 보았으면 한다. 시끄러운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 있는 적막한 시간이 오히려 마음의 활기를 넣어주는 충전의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노라면 외롭지도, 심심하지 않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혼자라서 좋다. 오늘 하루도 혼자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전 23화 무조건 좋은 사람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