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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28. 2022

수면 위를 걷는다는 건

아주 깊은 잠에 빠져 든다. 어둠이 짙게 내려 깔린 공간에서 잊은 줄 알았던 낯선 감각이 나를 지탱했다. 한걸음 내딛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 편안하게 들리는 다리는 평평한 어둠을 밟아 나간다. 균형 잡힌 움직임은 나를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올곧은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줬다. 꿈속에서의 나는 걷고 있었다. 누구보다 곧은 자세로 균형을 잃지 않고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잠을 많이 자는 편은 아니지만 이따금 한 번씩 찾아오는 불면증에 이삼일을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며칠 동안 자지 못했던 잠을 보상받듯 갑자기 몰아치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괜찮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오래, 아주 깊은 잠에 든다. 그럴 때면 가끔, 가끔 꾸는 게 서운할 만큼 드물게 기분 좋은 꿈을 꿨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을 담은 꿈이었다. 하지만 꿈은 현실의 반대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아주 우스운 생각이지만 나는 꿈에 불만이 조금 있었다. 꿈이라면 완벽하게 현실에서 동떨어진 풍경을 배경을 삼아 거닐고 있었더라면 꿈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언제나 꿈은 검은색 배경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내가 걷고 있는 형태였다. 만약 완벽한 꿈을 꿨더라면 나는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득한 꿈속에서 깨어날 때면 미련 없이 눈을 뜰 수 있었다.


“발에 힘을 주고 내 손을 밀어 봐요.”


 현실에서의 나는 땅을 밟을 수도 없었다. 끔찍이도 휘어졌던 다리를 수술해주셨던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앉아서 생활하는 나에게 발에 힘이 있는지,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간단히 테스트를 해보았다.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다리에는 미비하게 힘이 있었다. 물론 갓 태어난 아기의 발차기보다 힘이 없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힘을 내어 밀고 싶어도 여전히 선생님 손은 처음 위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설 수 있겠어요?”


이건 우습게도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병원을 갈 때마다 X-ray 촬영을 하러 들어갈 때면 듣는 말이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전혀요.”하고 대답하면 그때서야 “아, 그럼 앉아서 촬영하죠.”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뭔가 이치가 맞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리가 너무 차이가 나서 그냥은 못 서있겠어요”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병원에서 전문적으로 나처럼 다리 길이가 차이나는 환자에게 맞춤화를 맞춰주는 보조기 회사를 연결해줬다. 일반적으로 병원 의료용으로 맞춘 신발이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세련된 수제화가 아닌 투박하고 튼튼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약해진 다리에 부담이 덜 가지도록 통굽으로 전체가 높아진 신발은 다리 변형을 막기 위한 보조기를 연결할 수 있는 형태의 맞춤화였다. 마치 처음 보았을 때 벽돌 두 장을 붙여놓은 것처럼 하나의 커다란 검은 덩어리로 보였다.


“딱딱하고 너무 무거워요”


정말 궁금할 정도로 이걸 신으라고 맞춰 준 건가? 의문이 들만큼 신발은 신을 수 있기보다는 발 디딤돌 같았다. 일반적으로 1~3cm 정도의 차이라면 신발이 저렇게 투박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보기에도 얼추 기성화와 비슷한 모양새로 제작된다고 하였지만 내 발에 맞춰진 신발은 10cm가 넘는 높이의 검은색 통굽이 신발 밑바닥에 붙어 있어서 모양도 투박하고 무게도 무겁고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두운 꿈속을 헤맬 때보다 더 암울한 어둠이 발아래 깔린 것 같았다. 쇳덩이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신발을 신고 발을 들어 올리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간신히 일어났을 때 두 발로 땅을 딛고 중심을 잡아 줄 수 있게 도와주긴 했다. 하지만 커다랗고 투박한 신발은 나를 더욱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하였고, 무거운 무게감은 오히려 다리에 무리를 주기에 며칠도 신어보지 못한 채 방 한편에 고스란히 처음 왔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리 늘리는 수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조기 맞춤 신발을 맞추던 날이었다. 신발을 맞춰주시는 분이 넌지시 우리에게 물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질렀다. “그건 생각 없어요.” 이 수술에 대해서는 다리 수술 후 깁스를 풀러 주시던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수술이었다. 짧은 길기와 튼튼한 뼈라면 가능할 것 같지만 나처럼 길이 차이가 심하고 뼈가 약하다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만약 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의 수술로는 길이 맞추기는 어렵고, 여러 번의 수술을 해야 하는데 과정이 길고 힘들 거에 비해 양쪽 길이를 맞추기엔 역부족할 거 같다며 지나가는 말처럼 말씀해주셨다. 수술을 시작한다면 긴 싸움이 될 것이다. 나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수술에 긴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이미 처음 했던 수술도 충분히 긴 시간이 보내야 했고 힘든 과정이었다. 신경이 손상되거나 완전한 하지 마비 환자가 아니었기에 다시 수술을 한다면 나는 당연히 어릴 때처럼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걸을 수 없었고, 디딜 수 없었다. 모든 궁극적인 목표는 나의 걷기였다. 하지만 결국 목표 달성에는 실패하였다.


“요즘 어때요?”


병원에 가면 심심치 않게 선생님이 일상을 묻는 건지, 상태를 묻는 건지 ‘요즘’에 대해 묻곤 한다. “좋아요.” 몸도 마음도. 궁극적인 목표였던 걷기에 실패했다고 세상이 슬퍼지는 건 아니었다. ‘걷지 못한다는 것’을 뺀다면 대체적으로 만족적인 삶을 살고 있다. ‘걷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기보다는 그에 따르는 해결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불편할 뿐이다. 이를테면 혼자 서점가기, 혼자 과자 사 먹기, 자동문 아닌 문 열어보기 등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해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좋아지고, 직접 걷지 않아도 <걸어서 세계 속으로> 떠나는  프로그램으로 TV를 통해 대리 여행을 하고, E북이라는 인터넷 서점으로 굳이 실제로 서점에 가서 읽어보며 고르지 않아도 저렴한 가격에 많은 책을 볼 수 있었고, 로켓 배송이라는 어마어마한 서비스로 먹고 싶은 것들을 고르기만 하면 생각보다 빨리 먹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금붕어를 키우다 보면 물속에서 살아야 하는 금붕어가 뻐끔뻐끔 거리며 수면 위로 올라올 때가 있다고 한다. 물속에서만 있어야 하는 아이가 왜 이렇게 힘들게 뻐끔거리며 굳이 수면 위로 올라오나 생각했다. 하지만 금붕어의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은 이유가 있었다. 물속에 산소가 부족하면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와 산소를 보충한다는 것이다. 금붕어는 최선을 다해 어항 안에서도 쉼을 쉬기 위한 노력을 했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아는지 금붕어는 살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던 행동이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던 금붕어의 행동처럼 꿈에서 어둠 속 수면 위를 하염없이 걷던 나의 모습은 비록 현실에서는 온전히 걷을 순 없지만 목발을 이용하여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선택한 방법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일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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