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240915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전시를 보러 가려 했고, 은행을 다녀온 뒤 시간이 조금 떴다.
눈여겨보고 있던 한의원에 들렀다.
그냥 간단하게 허리에 침이나 맞고, 평소 기력이 없는 몸이라 한약 먹으며 속을 다스려 보려 했던 건데, 진맥을 짚고, 여러 가지 설문지를 작성했다. 몇 가지의 질문이 오가고 나가서 대기해 달라고 하더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뇌파검사를 하자고 한다.
한의원에서 뇌파검사라니.
검사지를 훑으며 선생님은 나에게 "요즘 일이 많으신가 봐요?"라고 했다.
딱히 일이 많을 일이 있나...? 오디션도, 작품도 없는 요즘인데?
"아.. 아니요?"
"뇌가 너무 과부하 상태예요. 장기들도 일을 안 하고 있어요. 몸이 절전모드예요. 이게 절대 요 며칠 피곤해서 이렇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실례지만 어떤 일 하세요? 다 누적된 거예요. 쉬셔야 해요."
뇌파 검사의 그래프는 일반적인 활동의 뇌파보다 두 배씩 더 길어져 있는 나의 뇌 그래프였다.
약을 쓸게 아니라 몸을 정상적인 몸으로 올리는 게 먼저라고 했다.
난 정상적이지 않나? 왜?
장기들은 일을 하지 않고 있고, 뇌는 쉬지 않고 일해서 문제라고 했다.
우울했을 거고, 자주 몸이 아팠을 거고, 내가 작성한 질환들 수족냉증에 추위를 많이 타는 것들 등등 다 문제라고 한다. 저체중의 몸이 정상 체중으로 올라와서 내가 건강해지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기아모드여서 생존의 목적으로 영양분이 들어오는 족족 저장하게 되어 갑자기 살이 찐 거라고 했다.
선생님과 상담이 끝나고 상담실장님과의 대화에서 생각해 본다는 말을 남기곤 빈손으로 병원을 나왔다. 더 심란해졌다.
'내가 내 몸을 돌보지 않았구나.'
사람들이 "너 그러다 병난다, 병난다"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정말 내 몸은 소리치고 있었다.
온종일 심란해서 우울했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경각심을 느끼고, 일을 줄이고 잠자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퇴사가 시기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곧 퇴사도 하겠다, 몸을 돌봐 보겠습니다!
24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