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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IS Dec 19. 2020

오빠 미안해

전화가 왔다. 큰삼촌이다.


‘네, 삼촌.’

‘응, 내일이 니 엄마 생일인디.’

‘내 알고 있..’

‘뚜뚜뚜..’


음력 10월 1일은 어머니 생신이다.

혹여 내가 어머니 생신을 까먹었을까봐

외삼촌이 또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또 그렇게 전화를 끊으셨다.


어머니께 웃으며 또 큰삼촌 전화가 왔었다며

그런데 엄마랑 큰삼촌은 아직도 서먹하고 어색한거 같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돌아 앉으시며 '그게 말이야..' 하시며 입을 여셨다.


1950년 6.25가 터지자.

큰 외할아버지는 징병 대상자로 전쟁에 나가셨다고 한다.

이제 갓 결혼한 새색시를 집에 두고..


전쟁이란게 늘 그렇듯..

야속한 총알은 하필 이제 막 결혼한 젊은 청년의 품으로 파고 들었고

졸지에 혼자 되신 큰외할머니에게 외할아버지가 찾아가셨다.


흰소복을 입고 하염없이 울기만 하시는 형수에게 외할아버지가 약속했다.

나도 이제 막 결혼을 했응께, 곧 아이가 있을거라고.

내 처음 난 아들을 형님 아들로 주겠다고.

형수가 아들로 삼고 의지하며 잘 길러달라고.


외삼촌은 그렇게 태어나서 젖을 떼자마자 큰집에 양자가 되었다.

이따금씩 외할아버지가 큰집에 가실 때면,

외할아버지는 어머니 말을 잘 들으라며 삼촌에게 유독 엄하게 대하셨고.

큰삼촌은 어린시절 외할아버지가 무서워 그렇게 우셨다고..


하지만, 젊디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본인이 낳지도 않은 아이를 키운다는게 쉬운일이었을까..?

어느날 외할머니는, 한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고,

큰삼촌은 혼자 남은 빈 집에서 그렇게 ‘엄마, 엄마'를 찾다가

결국 진짜 ‘엄마’가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 큰삼촌이 초등학교 4학년,

어머니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한다.


큰삼촌은 짐도 풀지 못한 채 대청 마루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데,

사실상 큰딸이었던 어머니가 세 명의 동생을 거느리고

고개 숙인 그 아이에게 가서


우리집에 왜 왔냐고.. 

여기는 우리집잉께,

느그 집에 가라고..

얼른 느그 집에 가라고..

하셨다고... 


어머니는 그때 일을 말씀하시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울컥 울음을 터트리셨다.


민찬아 내가 그때 큰삼촌한테 그랬어...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오빠한테 너무 미안한거 있지...


철 없는 아이였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위로 해 드리는데

‘오늘이 니 엄마 생일인디’ 하던 삼촌 목소리가 생각나

내 눈에도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재빨리 고개를 뒤로 젖히며 생각하는 척을 한다.

가만있자.. 

엄마, 큰삼촌은 생신이 언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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