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전 일이다.
등줄기를 훅훅 볶는 8월 삼복 더위에
어머니 손 잡고 청량리 경동시장 갔던게..
어머니와 나는 ‘굼벵이’를 구하고 있었다.
굵고 큼지막한 중국산 굼벵이가 아니라
시골집 초가집 지붕에서나 산다는
알이 잘고 조그마한 국내산 굼벵이를..
“아저씨, 굼벵이 있어요?’”
“여기 한 번 보이소.”
“아니요, 중국산 말구요.
우리걸루요, 초가집 지붕에서 산다는..”
“아지메요, 요즘에 그런 굼벵이를 어디서 구한답니꺼.”
하루 종일 헤맨 어머니와 나는 알고 있었다.
국내산 굼벵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보다도..
국내산 굼벵이를 구한다 하더라도.
그 굼벵이를 볶아서 곱게 가루 내어
아버지께 가져다 드린다 한들
아버지의 간경화는 낫지 않는다는 것을
한겨울, 딸기가 먹고싶다던 어머니를 위해
집을 나선 효자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어머니와 나는 그렇게 굼벵이를 구하러 다녔다.
하루를 꼬박 경동시장을 헤맨 끝에
국내산 굼벵이를 아주 조금 구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 올리려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준비했으랴.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그 해 8월, 하늘나라로 가셨다.
동사무소에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고 오신 어머니는
밥상 앞에서 숟가락을 입에 무신 채로 우셨다.
이제 등본에 아버지 이름이 없어..
하시며..
공교롭게도 그 후,
나는 청량리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720버스를 타고 경동시장을 지날 때마다
그 날 어머니와 찾았던 굼벵이가 떠올랐다.
경동시장 하면 굼벵이가 떠올랐고
굼벵이 하면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날 어머니와 내가 경동시장을 헤매며
찾은 것은 굼벵이만은 아니었으리라.
우리는 그날 시골집 초가지붕 깊숙이 숨어있는 굼벵이마냥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었던 아버지란 존재의 소중함을 찾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도 가끔은 ‘미연아..’ 하시던
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으시다는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