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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렐라 Jan 11. 2019

새우 타코가 뭐라고

멕시코, 메리다(Mérida)

자전거를 한인민박집에 잠시 맡겨두고, 버스를 타고 구경하러 갔던 하얀 도시, 또는 백색의 도시라고 불리는 메리다(Mérida). 소문으로는, 멕시코의 마약왕이 본인의 가족을 메리다에서 지내게 하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어쩔 수 없이 안전하다고 하는 도시다. 그래서 백색의 도시라고 불리는 건지, 그냥 2015-2018 메리다의 관광테마를 백색의 도시로 잡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소문을 듣고 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해가 저문 후에 거리를 누벼도 그 누구 하나 위협적이기는커녕, 정말이지 모든 이가 친절했던 메리다였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도시 자체도 참 예쁘고 잘 정돈되어 있는 데다가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공연이 열리는 곳인데, 그에 맞춰 물가도 꽤 비싼 편이다. 멕시코 어디에서도 외식비가 1인 100 페소면 충분했는데, 메리다에 오니 조금 괜찮다 싶으면 300페소(약 18000원)는 기본이다. 모처럼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볼까 싶어 찾아갔던 한 레스토랑의 가격에 깜짝 놀라 결국 우리가 선택했던 것은 월마트 치킨과 맥주였으니.


잘 정돈된 도시 메리다


메리다 구경을 마치고, 바야돌리드 (Valladolid)로 향하는 날이 밝았다. 덥디 더웠던, 그리고 가난한 여행자의 주머니 사정 봐주지 않고 모든 것이 비쌌던 메리다에서 도망치듯 떠나는 느낌이 드는 아침이었다. 조금 더 즐기고 싶었는데 충분히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마지막까지도 나는 메리다에 괜스레 서운한 점이 많았다. 바야돌리드행 오전 11시 버스 티켓을 끊은 것도 나였고, 느지막이 8시 반이 다 되어서야 일어난 것도 나였지만 어쩐지 아침부터 모든 게 다 불만이었던 나. 얼른 짐을 챙겨서 아침 겸 점심으로 새우 타코를 먹고 버스터미널에 가자던 남편은, 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는 이유를 들며 그냥 방에 좀 더 앉아있다가 나가자는 의견을 내비쳤다.


메리다에 오기 전부터, 그리고 여기에 온 이후에도 다른 블로그에서 몇 번이고 봐 왔던, 그 별 것도 아닌 새우 타코가 나는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4박 5일이나 메리다에 머물렀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회가 닿지 않아 결국 마지막 날까지 미루게 된 것인데, 그마저 남편이 가지 않겠다 선언을 하니 못내 속상해졌다. ‘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건데, 아직 한 시간 반이나 시간도 있는데, 빨리 가면 충분히 시간이 되는데. 여태 뭉그적거리고 나니 시간이 안된다는 건가.’


아침부터 메리다에게 향했던 서운함은 남편에게로 향하는 서러움으로 변해 그 모습을 나타내고야 말았다. 한참 말없이 짐 정리를 하고, 벌컥 나 혼자 배낭을 메고 숙소에서 나가려고 하니 남편은 당황하며 묻는다.

"뭐 때문에 그래? 말을 해야 알지.”

‘별것도 아닌 타코가 오늘 꼭 먹고 싶은데 남편이 안 들어줘서 서운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자존심이 팍팍 상하는데 말은 못 하니 짜증이 배가 된다. 배낭을 어깨에 들쳐 메고 거리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다 허겁지겁 쫓아 나온 남편을 보자, 그제야 나는 모두 바닥에 내려놓고 서러움을 토해냈다.


"내가 먹고 싶다는 거 그것 좀 어떻게든 해주려고 하면 안 돼!? 먹는 걸로 내가 이렇게까지 자존심 다 구기며 치사해져야 되냐고!!"


곧이어 도착한 택시에 우리와 짐, 그리고 무거운 공기까지 함께 실렸다. 분명 방금까지도 흥에 넘쳤을 택시기사는 이 공기를 감지했는지 눈치만 살살보며 조심스레 액셀을 밟았다. 무겁고도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차 안을 감싸고, 적막만이 감도는 채로 20분 쯤이 지났다. 남편은 Marlin Azul이라는, 내가 말하던 그 음식점 앞에 택시를 세웠다. 이제 와서 타코를 먹자고!? 서운함을 직접 입 밖으로 내뱉어야 내 말을 들어주는 것 같아 타코를 보기도, 먹기도 싫어졌다. 이미 입맛이 다 떨어져 안 먹겠다고 고집부리는 나를 붙잡은 채, 기어이 남편은 타코 네 개를 포장해 한 손에 든 채 나를 ADO(고속버스) 터미널로 이끌었다.


 결국 포장했던 타코 네 개


ADO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버스표와 행선지 등을 확인하고 나니, 버스를 타기까지 약 50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타코는 손에 넣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화해하지 않아 어색했던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나란히 앉아 각자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타코도 밉고, 안 먹겠다고 했던 남편도 밉고, 또 그걸 산 남편이 다시 밉고, 터미널의 놀이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모든 게 다 밉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쯤 흘렀을까, 옆에서 뭔가가 부스럭거리더니, 이내 타코를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들린다. 옆을 돌아보니 눈 크게 뜨고 한껏 웃으며 타코를 먹고 있는 남편.


"이거 엄청 맛있네!! 얼른 먹어봐! 새우 데친 거보다 튀긴 게 진짜 맛있어!!!”


저 소리에 기가 차다가도, 맛있으면 다행이다 싶다가도,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데 나에게 얼른 먹어보라고 재촉하는 남편. 한입 먹어보니, 맛있다. 남편 말대로 새우튀김이 들어간 타코는 더더욱 맛있다. 젠장. 이 맛있는 걸 이렇게 먹고 앉아있어야 하다니. 백색의 도시 메리다는 남편의 환호성과 함께 기억 저편에 남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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