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Los Angeles)
약 한 달, 미국 서부에서의 라이딩이 끝났다. 유럽이며, 캐나다며, 전 세계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 몰려드는 미국 서부의 1번 고속도로는 정말 아름다웠다. 뻥 뚫린 태평양, 넓은 도로, 대자연의 캠핑장. 과연 자전거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부에서의 만족스러운 라이딩을 마치고 우리는 두 갈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대로 쭉 남쪽으로 달려 미국/멕시코 국경을 자전거로 넘거나, 아니면 LA에서 멕시코시티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거나.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의 마지막 목적지, 로스앤젤레스. 등록된 웜샤워 호스트의 수에 비해 활동 중인 호스트가 많지 않아 잘 곳이 없을까 며칠을 전전긍긍하다 겨우 수락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투안'이라는 이름의 호스트는, 당장은 게스트가 두 명 있지만, 이틀 후에 그들이 떠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이틀만 마당에 커다란 텐트를 만들어 줄 테니 거기서 자고 그 이후로는 방에서 묵으라던 투안 아저씨.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저씨의 집은 LA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마지막 라이딩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겨우 도착했던 그 밤. 높은 곳에 위치한 집을 원망하며 올랐지만 막상 가보니 LA의 야경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당에 아저씨가 대충 만들어 놓았다는 텐트는, 족히 사람 대여섯쯤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다. 텐트 안은 침대 매트리스, 노란빛 전등, 작은 탁자 등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그 소품 하나하나에 아저씨의 정성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 집에서 무려, 열흘을 머물렀다. 예상했던 것보다 LA에 일찍 도착해 비행기 타는 날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던 탓이었다. 원래는 3일만 아저씨 집에 있고, 나머지 일주일은 게스트하우스에 갈 작정이었다. 아무리 자전거 여행자라지만, 기간이 많이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집에 열흘씩이나 비비적거릴 철면피들은 못 되었다. 이 집에서의 이틀째 밤, 아저씨에게 우리의 계획을 말하고 LA에 있는 동안 다시 만나 밥이라도 한번 먹자는 말을 전했다. 순간, 표정이 돌처럼 굳던 아저씨. 방이 비어있는데 왜 나가는지, 그냥 여기 있어도 본인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굳이 돈 써가며 나가서 다른 방에서 자는지를 물었다. 굳은 표정의 아저씨는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집에 있는 것이 더 좋고 편했지만, 손님이 있으면 주인이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하는지 알기에 나가려던 것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우리가 아저씨에게 상처를 준 것만 같았다. 한참의 얘기 끝에 우리는 LA를 떠나기 직전까지 아저씨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아저씨는 베트남에서 온 사람이었다. 어릴 때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 세계를 떠돌다가 미국의 대학에서 유학을 했다. 그러던 중, 베트남 전쟁이 터졌고 아저씨의 나라였던 남 베트남이 졌다. 순식간에 나라가 없어져 버린 아저씨는 그대로 미국에 남았고, 그렇게 가족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혼자 남아버린 아저씨. 그 큰 집을 한 사람의 온기로 채우기는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열흘간 우리는 아저씨에게 친구 같은, 동생 같은, 자식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매일 저녁이 성대한 파티였다. 한국 사람들과도 여러 번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아저씨는 한국음식을 정말 좋아했다. 저녁마다 뭘 해먹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잡채, 닭볶음탕, 짜장면, 떡볶이, 불고기, 비빔밥…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요리를 했고 아저씨는 그 어느 하나 남기는 법이 없었다. 하루 한식을 하면, 하루는 아저씨가 요리를 했다. 캐나다와 미국을 달리며 파스타와 햄버거에 질려있던 우리에게는, 아저씨가 직접 만든 베트남 음식이 꿈같은 일이었다. 쌀국수, 캄보디안 누들, 샤브사브 등. 현지에서 먹었던 베트남 음식보다도 훨씬 더 맛있었던 아저씨의 음식.
LA의 야경을 보러 그리피스 천문대를 방문하는 것도 아저씨와 함께였다. 비록 지독한 안개로 그 큰 도시의 불빛 하나 볼 수 없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천문대의 야경은 처음이라며 배를 잡고 웃던 아저씨와, 덩달아 웃음이 터진 우리.
자전거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거리를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던 아저씨는, 우리가 떠난 후 LA에서 샌디에이고까지(약 220km) 1박 2일 동안 다녀오는 여행을 계획 중이었다. 우리는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꼭 다함께 떠날 여행인 듯 신나게 계획을 세웠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저씨의 여행은 더 이상 화두에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아저씨는 창고에 넣어두었던 아저씨의 자전거가 도둑맞았다는 얘기를 전했다. 한두 푼짜리 자전거가 아니기에 깜짝 놀란 우리는 왜 그동안 아무 말도 없었냐며 걱정을 표시했다. 아저씨는 배시시, 웃으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 괜히 우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더불어, 말짱히 잘 있는 우리의 자전거까지 도난당할까 봐 불안해하지 않기를, 그저 이 집에 있는 동안은 마음 편히 지내기를 바랐다고 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만 살펴주던 아저씨가 마음 아프고 시리게 고마웠다.
정들었던 LA를 떠나던 날.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담아 매일의 추억을 사진으로 인화해 편지와 함께 전했다. 물끄러미 우리가 건넨 사진을 바라보던 아저씨는, 흐뭇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편지봉투를 건넸다. 엽서인가, 하고 열어보니 사진더미가 나왔다. 어쩜 이렇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저씨도 역시 우리와 찍었던 사진을 인화해서 선물한 것이었다. 마음이 찡했다. 연신 고마웠다고 말하며 나도 모르게 왈칵, 감동의 눈물이 터졌다.
매일 밤 나누었던 아저씨와의 대화들.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형성할 수 있었던 깊은 공감대, 같은 아시아인으로 나눌 수 있었던 많은 공통점들. 따뜻했던 그 집의 분위기와 맛있었던 음식, 언제나 배시시 미소 짓고 있던 푸근한 아저씨의 얼굴. 웜샤워를 통해, 자전거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만난 참으로 특별한 인연으로 우리는 타지에 따뜻한 추억을 만들었다. LA에서의 기억은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LA를 다시 방문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언제 떠올려도 따뜻함이 가득한 아저씨가 보고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