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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렐라 Jan 04. 2019

좁아터진 패니어 속, 맥주잔 2개

브라질, 블루메나우(Blumenau) - 옥토버페스트

브라질에 들어온지도 벌써 일주일. 위험하다는 명성이 자자한 브라질이지만, 쿠리치바(Curitiba)에서 시작해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 우리의 자전거 여행은 자못 순조로웠다. 도로 상태도 참 좋았고, 중간중간 만날 수 있는 주유소에는 마트와 뷔페가 언제나 함께 있어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주유소에서 안전하게 캠핑을 할 수도 있고, 도시에 들어가면 웜샤워 호스트가 우리를 반겨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쿠리치바에서 출발해 남쪽 해변가를 따라 쭉 내려가려던 우리였지만, 블루메나우 (Blumenau)라는 작은 마을에서 10월 중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동했다. 언제나 축제운이 따라주는 우리였는데, 이렇게 진짜 큰 축제가 딱 이때 열릴 줄이야! 독일에서 열리는 것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블루메나우의 옥토버페스트란다. 굳이 블루메나우를 거쳐 남쪽으로 가려면 꽤 돌아가야 했지만, 맥주광인 우리에게 그런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전 만난 웜샤워 호스트의 부모님이 블루메나우에서 우리를 재워줄 수 있다고 했다. 잘 곳도, 맥주도, 흥겨운 축제도 있다는데, 그럼 당연히 가야지!


옥토버페스트, 낮에 열리는 퍼레이드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고 달려, 블루메나우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핸드폰의 와이파이를 연결해보니, 놀라운 메시지가 한 개 와 있었다. 쿠리치바에서 우리를 재워줬던, 웜샤워 호스트 세르히오(Sergio)와 로지(Rose)가 블루메나우에 옥토버페스트를 즐기기 위해 지금 와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함께 맥주를 마시자며, 세르히오는 차를 끌고 직접 우리를 데리러 왔다. 


입장권을 내밀고, 옥토버페스트 축제장소로 들어가니 사람이 정말이지 바글바글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축제장에만 해도 사람이 몇천 명은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커다란 광장이 네 개가 연달아 붙어있었다. 1 광장, 2 광장, 3 광장을 지나며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는 곳에 멈춰 섰다. 이 광장 중앙, 무대 위 밴드가 흥겨운 독일 전통 노래를 연주하고, 그 무대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귀여운 독일식 모자를 쓰고, 전통복장을 입은 채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실내의 벽을 따라 ‘ㄷ’ 자로 주욱 이어진 맥주 가게 앞에는 모두들 저마다 개성 있는 맥주잔을 손에 들고 맥주를 주문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 앞에서는 세르히오와 로지가 어깨에 끈을 매고, 그 끈에 맥주잔을 연결한 후 어떤 맥주를 마시면 좋을까 토론을 하고 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 거대한 축제의 장이란! 놀랍고 신기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나를 보며 세르히오와 로지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그들, 갑자기 뭔가를 심각하게 얘기하고 우리를 끌고 바깥으로 무작정 나섰다. 


낮에는 텅 빈 광장, 축제가 시작되는 밤이면 사람이 바글바글!


“어딜 가는 거야?”라고 묻는 나에게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무작정 앞으로 걷는 이 둘. 한참 서성이더니 예쁜 맥주잔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섰다. 그러더니 나와 남편에게 몸을 돌려 맥주잔을 하나 고르란다. 

“하나 골라봐. 너희가 자전거 여행을 하기 때문에 짐을 늘리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너희가 맥주잔을 하나 가졌으면 좋겠어. 브라질의 옥토버페스트에 왔으니, 그걸 기념할만한 선물을 주고 싶어!

짐이 늘어 부담스럽다면, 본인들 잔을 빌려주고 본인들 쓸 잔으로 어쨌거나 두 개를 더 사겠다는 이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겁지는 않지만, 500ml 맥주잔을 안 그래도 짐이 많은 우리 패니어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게 가능할까. 짐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 필수품 외에 쇼핑이란 걸 1년도 넘게 하지 않은 우리였다. 그렇지만, 예쁜 맥주잔을 벌써 찾고 있는 로지와, 환하게 웃으며 선물하고 싶다는 눈을 반짝거리며 빛내는 세르히오를 보니 이들의 호의를 기쁘게 받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옥토버페스트에서 선물받은 맥주잔


마음에 드는 예쁜 맥주잔 두 개를 고르고, 어깨에 매는 끈도 골라 맸다. 이 맥주잔을 바(Bar)로 들고 가 한 잔에 10 헤알(약 3500원) 짜리, 옥토버페스트 기념 스페셜 맥주를 잔에 한가득 담았다. 축제 광장의 중앙에 서서 한 손에는 이 맥주잔을 들고, 또 다른 손으로는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알지도 못하는 독일의 전통민요를 따라 불렀다. 콩콩 뛰며 그들의 춤도 열심히 따라 추었다. 선물 받은 맥주잔에 담긴 맥주는 그동안 마신 어떤 맥주보다도 시원하고 고소했다. 옆에는 남편과, 세르히오&로지, 그리고 이들의 친구 둘이 서서 함께 뛰고 있었다. 아, 축제라는 것이 이렇게 함께하는 즐거움이었다.


남편, 나, 세르히오, 로지, 라쿠엘, 오디네이. 흥겨운 시간!


좁아터진 내 프런트 패니어에는 맥주잔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먹을 것을 넣기에도, 꼭 필요한 물건만 넣기에도 비좁은 패니어지만 맥주잔을 뺄 생각은 전혀 없다. 언제나 자리가 없다며 불평하는 남편도 맥주잔만큼은 소중하게 넣어 다닌다. 언젠가 독일의 진짜 옥토버페스트에 가서도 이 맥주잔을 쓸 생각으로 말이다. 계속해서 자전거를 달리는 지금, 하루의 라이딩이 끝나고 캔맥주를 굳이 이 맥주잔에 덜어마시며 그들을 추억한다. 언젠가 세르히오와 로지가 서울에 놀러 온다면, 우리도 이들에게 기념품을 양팔 가득 한아름 안겨 돌려보내리라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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