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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렐라 Dec 28. 2018

낯선 곳, 따뜻한 사람들

캐나다, 퀘벡(Quebec) 주

웜샤워. WarmShowers, 우리말로 직역하면 따뜻한 샤워라는 뜻이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따뜻한 샤워와 함께 하루 마음 편히 쉬어갈 곳을 내어주자는 목적에서 시작된 커뮤니티로, 전 세계 자전거 여행자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는 곳이다. 어떤 도시에, 며칠에 도착할지 미리 메시지를 보내 놓으면 그 지역의 현지인 호스트가 우리의 숙박 요청을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식이다. 우리가 자전거로 세계를 떠도는 동안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어주었고, 우리는 여행 이야기 또는 한국의 문화를 들려주거나, 한식을 소개하는 등으로 보답하곤 했다. 


웜샤워 홈페이지. 자전거 여행자를 꿈꾸는 누구나 호스트, 또는 게스트가 될 수 있다.


이 날도 우리의 하루 숙박을 수락해 준 웜샤워 호스트 'Robert(로버트)'의 집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퀘벡시티를 향해 가는 길. 빽빽한 옥수수밭이 양쪽으로 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침에 출발할 때만 해도 분명 화창했는데, 날씨가 언제 이렇게 변한 건지 하늘이며 사방이 흐릿했다. 아직 겨우 오후 3시였다. 가장 밝아야 할 이 시간, 회색빛의 하늘이 날 내려다보며 금방이라도 비를 쏴- 하고 뿌릴 기세였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갈 길이 30km나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30km를 한 시간 만에 달려 약속했던 4시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로버트에게 늦을 것 같다는,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핸드폰의 웜샤워 메시지함을 열어 보니 예상치 못한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메시지를 늦게 확인해서 미안해. 혹시 오늘 우리 집에서 묵고 싶으면 우리는 환영이야. 전화나, 문자를 해도 좋으니 필요하다면 연락 줘. -Beat(베아)로부터” 



옥수수밭이 빽빽한, 비 오기 직전 그 날의 길.


이 근처에 숙박 요청이 가능한 웜샤워 호스트는 로버트와 베아, 두 명이었다. 로버트의 집은 우리의 출발 지점으로부터 80km 떨어진 곳에, 베아의 집은 5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가까운 베아의 집에 묵고 싶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고, 감사히도 우리가 묵을 수 있게 수락해 준, 좀 더 멀리 있는 로버트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마침 베아의 집 근방에 있는 이때, 비가 퍼붓기 직전의 이 상황에, 베아의 수락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어쩌지? 고민하는 사이,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떨어지더니 이내 장대비로 바뀌었다. 평소답지 않게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앞뒤를 잴 시간이 없었다. 메시지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곧장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방금 메시지를 받은 피터렐라에요. 비가 갑자기 너무 많이 내려서요, 죄송하지만 지금 가서 오늘 하룻밤 묵어도 될까요?” 

“당연하지! 빨리 와. 혹시 너무 멀리 있으면 내가 차로 데리러 가줄 수 있어!” 

“아니에요, 지도를 보니 5분이면 갈 것 같아요. 얼른 갈게요!” 


꼭 운명인 것만 같았다. 오늘은 이 집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그런 운명.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베아는 너무나 흔쾌히 'Yes'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이미 한바탕 쏟아붓는 비에 홀딱 젖은 우리, 그 어떤 때보다 총알같이 달려 5분 만에 베아와 그의 아내 Jacinta (자신타)의 집에 도착했다.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인사는 나중에 하고 얼른 샤워부터 하라며 우리를 안내했다. 원래 약속했던 로버트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한 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아, 정말 이래서 웜샤워라고 부르는 거였지. 자신타는 샤워를 마친 우리를 불러 식탁에 앉히고, 파스타와 피자, 맥주 등을 내어주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우리를 이 집에 묵게 허락해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저녁까지 내어주니 고마워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우리를 보더니 베아와 자신타는 알겠다는 듯 이내 본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베아, 자신타와 함께 즐거운 저녁시간


3년 전, 우수아이아부터 알래스카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무려 21개월에 걸쳐 자전거로 종단한 적이 있는 이들. 그때 본인들도 웜샤워의 도움은 물론, 웜샤워 호스트가 아닌 보통 현지인의 집에서 묵기도, 또 끼니를 얻어먹기도 하며 갚을 수 없는 도움을 많이 받았단다. 낯선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행을 마치지 못했을 거라고. 그때 받았던 도움을 다시 타인에게 돌려주고 싶은데, 본인들의 집이 외진 곳에 있어 평소 여행자들이 많이 들리지 않아 속상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너무나 기쁘다며 밝게 웃었다. 




다음 날, 푸짐한 아침! 


다음 날 아침, 우리의 아침을 마련해 주고, 점심에 먹을 도시락까지 싸 주던 이들. 

“너무 고마워. 이 신세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꼭 다시 보답하고 싶어.”

고마움을 표현하는 나의 말에, 돌아오는 이들의 답은 놀라웠다. 

“아니야, 우리에게 갚으려고 하지 마. 나중에 다른 여행자들을 도와줘. 우리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걸 너희에게 갚는 거니까.” 


따뜻한 샤워, 하룻밤의 포근한 잠자리가 웜샤워의 목적이 아니다. 웜샤워의 진짜 목적은, 여행자와 정을 나누고, 감동을 주고받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 2년, 우리는 정말 많은 웜샤워 호스트들을 만났다. 추억을 쌓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제는 우리가 돌려줄 차례다. 우리에게, 어떤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게스트들이 찾아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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