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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렐라 Oct 20. 2019

세계여행, 그 첫날.

우리.. 잘할 수 있을까?

세계여행 출발의 날이 밝았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어 떠나는 날, 자전거 세계여행을 떠나는 날. 우리가 진짜로 떠나는 것이 맞을까, 이 모든 것이 다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우리가 예매한 인천발 캐나다행 비행기는 오전 11시, 조금 넉넉하게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분명 일찍 자리에 누웠는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탓에 결국 잠에 빠진듯한 느낌이 든 건 새벽 3시. 한 시간쯤이라도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아마 우리보다 더 심란한 밤을 보냈을 엄마. 우리가 세계여행을 간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을 텐데, 운동을 싫어하는 딸과 가족이 된 지 고작 9개월 된 사위가 어디인지도 모를 장소들을 자전거로 여행한다니 마음이 오죽했을까. 한숨도 못 잔 듯한 얼굴을 한 엄마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하고 우리를 마중했다. 그 새벽에 아파트 1층으로 우리를 배웅하러 내려온 엄마는, 얼른 가라는 손짓을 했지만 눈빛은 우리를 꽉 붙잡아맸다. 나 역시도 기약 없는 여행이었기에 언제 돌아올지 몰라 차마 ‘다녀오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갈게’라는 메마른 대답을 내뱉었다. 끝까지 마음을 다잡는 듯했던 엄마는 내가 마지막으로 뒤돌아 봤을 때에야 빨개진 얼굴로 눈물을 그렁그렁 맺고 있었던 것 같다.


랙팩(자전거 뒤에 싣는 가방인 패니어의 일종) 하나씩 겨우 어깨에 들쳐 메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비행기에 실을 자전거 상자가 워낙 커서 그 짐을 실어줄 큰 차가 필요했는데, 마침 남편의 친구가 본인 트럭으로 공항까지 실어주겠다고 도움을 자처해 주었다. 덕분에 3년 동안 여행을 떠날 사람 치고 비교적 가벼운 복장을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 앉아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지갑을 정리하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현금이 들어있다. 분명 모두 다 정리하고 캐나다 달러만 들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7만 원이나 들어있다니…!!!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할 것이었기에 ATM에서 입금하면 될 일이었다. 별 것 아니지!


시작부터 난감했던 우리의 첫 날.


그렇게 ATM을 찾아 돈을 넣고 ‘입금하기’를 누르자마자 갑자기 기계 장애가 발생했다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아니 왜…???? 평소에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하필 오늘 지금 비행기를 타러 가는 이 시간에…??? 조금 기다리면 되겠지 싶었지만 계속해 묵묵부답인 ATM. 하는 수 없이 은행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니 기계 오류라며, 기계에서 돈 회수해서 입금하면 가족에게 연락 줄 테니 걱정 말고 떠나란다. 휴. 쉬운 것이 없다.




어쨌든 무사히 도착한 공항에는 남편의 친구들이 우리 짐을 카트에 실어놓고 활짝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공항까지 와 준 것도 고마운데 정리까지 싹 해서 미리 기다려주다니…. 게다가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 손에 곱게도 쓴 편지 두 통과 책 한 권을 건넨다.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은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다가오는 따뜻함에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비행기에 싣고 떠날 자전거 두 대와 나머지 우리의 짐들.


두근거림, 고마움, 감동 등을 마음에 담아 비행기에 올랐는데, 자리에 앉으니 으슬으슬 한기가 찾아온다. 비행기야 으레 쌀쌀한 것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남편은 멀쩡하고 나만 덜덜 떨고 있다. 아아, 아무래도 내가 열이 펄펄 나는 중인 것 같다. 열이 끓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미리 시간을 들여서 몇 달에 걸쳐 천천히 맞았어야 할 황열병 및 온갖 예방접종을 불과 1주일 전에 몰아서 맞았다. 게다가 여행 준비로 며칠 잠도 못 자고 피곤하게 보냈지 않았던가. 모든 부작용이 비행기 탑승과 동시에 몰려왔다. 열로 덜덜 떨고 있으려니 승무원 언니가 담요도 한 장 가져다 덮어주고, 그걸로도 부족해 남편은 가지고 있던 신문도 꺼내 내 몸을 덮어주었다. 기내식이 나오는지, 누가 무엇을 덮어주는지도 모르고 기절해 있다가 경유지인 베이징 공항에 내렸다.


멀쩡히 출발했지만 곧바로 기절.


한창 메르스가 유행하던 때라 전 세계가 민감하던 때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국자들의 체온을 검사하던 검역관이 나를 딱 붙잡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중국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데, 내가 지금 열이 끓는 것은 황열병과 예방접종의 부작용이라고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중국어가 문제인가? 영어로 설명하라고 해도 문제였다. 황열병… 노란 ‘황’ 인가…? 왜 나는 한자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Yellow …?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던 그 순간, 검역관은 나를 보더니 대뜸 서류를 내밀고 중국어로 무슨 말인가를 내뱉었다. 혹시나 싶어 서류를 쳐다보니, 이름, 국가 등 신상정보를 쓰는 것이 전부인 것 같았다. ‘저는 중국말을 못 해요’라고 영어로 답한 후 서류를 대충 써서 내미니 힐끗 보고는 ‘통과’라는 손짓을 한다. 아아, 얼마나 다행인지. 중국 공항에서부터 끌려가 잡혀있었더라면 여행 시작부터 이것보다 더 순조롭지 못할 뻔했다. 미리 통과해 나를 보고 있던 남편을 보니, 어지간히 걱정하고 있었던지 나보다도 더 사색이 되어 있다. “통과했어!!!” 하니 그제야 마음을 쓸어내리는 남편. 두 번째 비행기를 타다 잡히기 전에 일단 열부터 내리자며 공항 내에 있던 응급실을 찾아가 가지고 있던 미국 달러를 얼마인가 내고 타이레놀을 받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오른 밴쿠버행 비행기. 세계여행은 그 시작부터도 쉽지 않지만 나는 우리를 믿는다. 우리,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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