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전거 세계여행을 결심하다
"우리, 자전거 타고 여행하자."
세계여행을 결심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에게 내가 조심스레 꺼낸 한마디였다. 이미 세계여행을 하기로는 마음먹었고, 앞으로 어떤 나라를 갈지, 어떻게 다닐지 일정을 정하던 중이었다. 도서관에서 여행 가이드북을 잔뜩 빌려와 가고 싶은 곳을 찾고, 또 다른 블로그도 참고해 가며 열심히 일정을 정하던 나는, 듣도 보도 못했던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그동안 보통의 여행이라면, 어디 가서 얘기 한마디 정도는 거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했던 나였다. 10년 전 경험했던 캐나다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시작으로, 캐리어에 짐을 싸서 쉬지 않고 훌쩍훌쩍 떠나곤 했다. 새로운 문화와 음식, 언어는 언제나 신선한 충격으로 즐거이 받아들였지만, 여행하는 방법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접하게 된 자전거 여행은 내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트리는, 그야말로 쇼킹 그 자체였다. 아니, 이렇게 훌륭한 여행 방법이 있었다니!! 버스 타고 이동하며 기막힌 풍경들을 휙휙 지나칠 때의 아쉬움, 호스텔에서만 자야 하는 답답함, 관광지만 찍고 떠나는 단순함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천천히 이동하며 모든 풍경을 내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고, 원하는 곳에 텐트 치고 캠핑을 할 수 있으며, 또 웜샤워(Warmshowers)라는 훌륭한 커뮤니티를 통해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전거 여행. 세계여행에 이보다 매력적인 방법은 없을 것 같아 치킨을 뜯던 저녁, 남편에게 불쑥 말해버린 것이다.
"미쳤어..?"
'자전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남편의 얼굴에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미쳤구만'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놀랄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큰 배낭을 어깨에 메고, 열심히 걸어 다니며 여행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을 테니까. 우리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심지어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집 앞 슈퍼 가는 것조차 싫어할 만큼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 남편의 반대는 당연했다.
“세상에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황한 얼굴을 한 것도 잠시, 지나가는 말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남편은 농담조로 나에게 물었다.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는, 소위 말해 미친 사람이 실제로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렇게 물으면 내가 당황해서 '아니, 그냥 해 본 소리야'라고 대답할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지.
야심 차게 나는 몇 개의 자전거 여행 블로그 주소를 불러주었다. 그중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한 여행자의 블로그는 아예 노트북 화면에 띄워서 눈 앞에 실물로 보여주었다. 남편의 눈이 위아래로 찢어질 듯, 동그랗게 커졌다. 남편이 생각한 '미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그랬듯, 남편도 그들의 여행기에 푹 빠져들어 며칠 만에 모두 읽어냈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제안한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 남편은 내게 비장한 얼굴로 한마디를 건넸다.
"자전거,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