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디자인은 위기인가?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우로 포르치니(Mauro Porcini)'를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영입하면서 디자인 경영 전략에 큰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이는 삼성전자 창립 이래 최초로 외국인을 디자인 총괄에 임명한 사례로, 관련 업계뿐 아니라 디자인, 브랜딩 업계 전반에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 경험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마우로 포르치니는 '펩시코(PEPSICO)'에서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 Chief Design Officer)'를 역임했으며, 그 밖에도 '3M'을 비롯한 다양한 글로벌 기업에서 브랜드와 제품을 통합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그는 2012년에 포춘지 선정 '40세 이하 리더 40인(40 Under 40)' 리스트에 유일한 디자이너로 선정되며,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마우로 포르치니의 영입은 자연스럽게 삼성의 '디자인 경영'에 대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고(故) 이건희 회장은 일본의 디자이너 '후쿠다 타미오'에게 당시 삼성전자의 디자인 현황에 대한 자문을 의뢰했고, '후쿠다 보고서'라 불렸던 해당 자문 결과는 꽤나 처참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삼성전자의 디자인을 '2류'라 혹평하며, 부족한 디자인 경영 전략에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았죠. 이 평가를 계기로 1996년 고(故)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포하며 본격적인 디자인 경영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모바일, 가전 등에서 혁신적인 디자인 경쟁력을 갖추며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5년 지금, 삼성은 1990년대와 비슷한 디자인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우선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이나 품질 면에서는 최고 수준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제품 디자인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브랜드 관리에 있어서도 효율적이고 안정적입니다. 이는 분명히 성숙한 디자인 관리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딜레마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여전히 삼성의 스마트폰은 '아저씨 폰'이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품 외형의 문제라기보다는, 브랜드 경험 전반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디자인 자체는 기능적이고 정제되어 있지만, 감성적인 연결고리나 브랜드스토리텔링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죠. 제품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패키지 디자인, 매장에서의 경험, 광고 커뮤니케이션 등이 유기적으로 설계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브랜드로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디자인은 '형태(Form)'를 넘어 '경험(Experience)'의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제품 라인업이 매우 다양한 브랜드입니다. 오프라인 매장만 가봐도 매장이 마치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고 말하듯 모든 제품 스펙트럼이 마구잡이로 등장시키고 있죠. 이는 브랜드 경험의 명확성을 부족하게 만듭니다. 이제는 삼성전자의 각 제품군에 맞는 고객 경험 전략을 설계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공간 경험, 콘텐츠 전략,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고객 경험은 제품 사용 이후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제품 구매 후의 서비스 경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브랜드 커뮤니티 등의 요소도 디자인 경영의 중요한 축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사용 과정 전반에서 느껴지는 브랜드 감도로 이어집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디자인 관리 능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글로벌 기업답게 실력 있는 수많은 디자인 전문가와 자문가들이 브랜드와 제품을 위한 디자인 관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디자인 '관리'의 영역에서 삼성만의 디자인 '문화'의 만들어가야 할 시점입니다.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잘 정돈된 디자인 시스템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깊이 있는 정서적 연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디자인 문화입니다.
'디자인 관리'란 최적화된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안정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브랜드만의 '디자인 문화'는 조직 전체에 내재된 철학과 감성, 그리고 브랜드가 소비자와 맺는 관계의 방식까지 포함됩니다. 시장에서 차별화되고 소비자에게 각인될 삼성다움을 찾는 일. 이것이 바로 디자인 관점으로 '넥스트 삼성(Next Samsung)'이 바라봐야 할 지점이라 생각됩니다. 단순히 외형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일관된 경험으로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디자인적 문화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때라 판단됩니다.
디자인 경영은 더 이상 '제품 외형을 멋지게 만드는 작업'이 아닙니다. 브랜드 철학을 시각화하고,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며,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경영 전략입니다. 특히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 디자인은 브랜드의 본질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삼성전자는 기술과 품질이라는 전통적인 강점에, 감성적이고 일관된 디자인 경험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 브랜드의 무드를 새롭게 설정하고, 더 넓고 깊은 고객 충성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브랜드의 외양이 아니라, 철학을 담는 그릇이며, 고객과의 대화를 여는 언어입니다. 이번 마우로 포르치니의 영입으로 그런 삼성만의 디자인 문화가 만드는 전환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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