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을 경작하는 미시서사의 힘
<미나리> 거대담론을 경작하는 미시서사의 힘
미국 이민1세대 한국인 부부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는 병아리 감별사다. 이들은 딸 앤과 심장이 약한 아들 데이빗을 데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 이사를 간다. 병아리 항문을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들여다보는 대신 자연과 호흡하고 경제적인 성공도 이루어 가족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고픈 심정으로. 이는 누구나 한 번쯤 꿔봤을 꿈이지만 제이콥이 지닌 꿈의 씨앗은 부부나 가족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제이콥의 독단적 선택으로 발아하려 한다는 것. 이는 훗날 가족의 분열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수컷을 모두 불태우는 연기를 가리키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강요한 가르침은 불행의 점화를 촉진시킨다.
“수컷들은 쓸모가 없어. 쓸모가 있어야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데이빗 너도 쓸모 있어야 돼. 알았지?“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희생시키는가.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강한 생명력으로 쑥쑥 잘 자라나는 미나리 씨앗를 가져온 할머니(윤여정)도 역시 그랬다. 뇌졸중으로 반신 마비가 되어 아이들을 돌보는 쓸모를 할 수 없게 되자, 다른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도 최선을 다한다. 그녀의 최선은 가족에게 실의(농작물 전소)와 희망(해체된 가족의 봉합)이란 양가적 가치를 동시에 안겨준다.
심장에 난 구멍이 작아져 건강해진 데이빗은 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신 두 씨앗을 품은 채 강한 생존력의 미나리처럼 성장할 터다. 부부가 함께 수원을 찾을 때, 제이콥 부자가 미나리를 수확할 때, 가족, 친구, 사회가 서로를 도울 때 그 씨앗은 부부가 좋아했던 노래처럼 ‘정말로 사랑’이라는 자양분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정이삭 감독은 잘 성장한 미나리의 씨앗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우리는, 인간은 “쓸모 있으려고 사는가, 살아 있음에 쓸모 있는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관객은 자신의 얼굴 위로 영화의 오프닝에서 의아함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모니카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시대, 나이, 장소, 성별, 세대, 국적을 넘어 인간 모두에게 유효한 질문이기에. 가족의 화목을 위해 목적은 같으나 방법론에 있어 결이 달랐던 부부의 갈등역시도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사의 영원한 화두.
비애와 유머, 훈육과 포용, 적대와 환대, 오해와 이해 등이 교차하는 아주 작은 순간들의 미시서사가 모여 어떻게 개인사, 가족사, 나아가 종교사, 국사라는 거대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미나리>는 그리하여 경이롭다.
*3월 14일에 '카페 크리틱' 멤버들이 팟캐스트를 녹음합니다. 초대 손님으로 동구리 평론가님(<미나리> 정이삭 2020 (brunch.co.kr))과 함께합니다. 팟캐스트가 업로드 되면 댓글에 공지합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이곳 브런치나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에 댓글 남겨주세요. 이메일 springanne@naver.com 으로 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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