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킬 홍은화 Apr 30. 2022

사랑, 불가능한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것.

 <리코리쉬 피자> 단평 

<리코리쉬 피자> : 사랑, 불가능한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것.

홍은화


PTA(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에서 영화초반 단숨에 캐리턱들의 설정을 파악하거나 서사의 맥을 짚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때때로 어떤 작품들은 중반이 지나도록 난해하다. PTA의 영화 언어에서 배경이 되는 설정숏이나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씬 등의 영화 (촬영)문법은 익히 아는 형태들이지만, 인물들의 정체성, 대사나 사건 전개는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기표들로 점철되어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게리가 물침대를 발견하고 그로인해 촉발되는 다양한 사건들과 전개 방식, 알라나가 사진관 직원- 영화배우 지망생- 게리의 동업자- 선거사무소 자원봉사자로 이직하게 되거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관계가 그러하다. 관객은 게리와 알라나가 만나게 되는 인물들에 대해 이렇다 할 정의를 내릴 수준의 정보를 영화로부터 제공받지 못한다.(때문에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여러 차례 인다.) 게리가 알라나의 연기재능을 발견하고 오디션을 보게 한다. 이 때 심사를 보던 마리는 이 후 단 한번도 등장하거나 언급되지 않으며- 사실 게리와 알라나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그렇다- 이 오디션을 통해 게리와 알라나의 직업 관련해서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마리처럼 영화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 오디션 시퀀스는 알라나가 게리에게 가슴을 보여주느냐(서로를 사랑하고 있느냐의 척도)와 운전은 누가하느냐(둘 사이의 권력관계)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트리거로만 작동된다. 그렇다. PTA 영화들의 기표는 두 인물사이의 유대관계로 수렴된다. 때문에 서사 안에서의 사건/인물들은 주인공의 심리보다 부각 될 수 없고,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주인공들의 유대관계는 때론 모녀, 부자관계<매그놀리아>이거나 유사부자-혹은 우정과 로맨스의 경계 <마스터>(프레디와 랭케스터 박사)-, 연인<팬텀 스레드>, <펀치 드렁크 러브> , 친구 혹은 유사친구<인히어런트 바이스>(닥과 전 여친 호프)등 사회에서 ‘나’와 ‘타자’가 맺는 대부분의 관계이다. 다시말해 PTA의 영화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관계들이 실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다고, 우리가 힘겹게 쌓아올리고 이어가고 있다고,외치는 영화다. ‘나’와 ‘타자’의 ‘관계’맺음이 불가능해보이지만 엄연히 실존하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 

특히 이번 <리코리쉬 피자>에서는 연인/스크린(영화)의 사랑에 주목 했을 뿐. 

사랑의 온도, 나이차, 지적수준, 종교관, 삶의 철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들의 조우와 이끌림은 불가사의 할 정도다. 영화이기에 가능한 세계라기보다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불가해한 관계들을 PTA는 스크린으로 재현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7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굉장히 유명했던 레코드샵 이름으로 영화에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의 기표가 암시하듯 영화 내에는 70년대 캘리포니아의 무드만 존재할 뿐. (그러므로 청치인의 초심을 강조한 부동산 정책이 영화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해석을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관객 한 명 한 명이 유추해 내는 기의가 다르겠지만 특정 기표로/언어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리코리쉬 피자>라는 영화는 과거-현재-미래 그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사랑’의 뉘앙스를 충분히 풍기고 있다. 불가능한 (현실)세계, 불가능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체현해 내는 ‘사랑’과 ‘영화’에 대한 PTA의 찬사. 그리고 전작들에 전시한 여성성에 대한 속죄는 토핑처럼 얹혀 놓은 것처럼 보여질 뿐이다.  


질문: 1.게리와 알리나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 지점은 어디인가요?(어떤 사건, 신, 시퀀스) 

2. 클라이막스에서 게리와 알리나가 서로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 때 게리는 알리나가 오토바이에서 떨어졌을 때, 알리나는 게리가 경찰관에게 붙잡혀 갔을 때, 의 장면들이 삽입됩니다. 하지만 알리나가 게리에게 달려가는 이 인서트 컷은 사실 경찰서 시퀀스 내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영화에 등장한 것과는 반대 방향인데요.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절정에서 알리나를 향해 달리는 게리
절정에서 알리나를 향해 달리는 알라나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알라나를 향해 달리는 게리
경찰서이 있는 게리를 향해 달리는 알라나. 절정에서만 등장한다. 경찰서 시퀀스에는 이와 반대방향으로 뛰며, 같은 장면도 아니다.


* 영화카페, 카페크리틱 팟캐스트를 통해 저와 조일남 리코리쉬 피자 (brunch.co.kr) , 이보라, 박동수 다른 세계로 달려가기 (brunch.co.kr) , 윤아랑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2021 (brunch.co.kr) , 이은택 영화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 네이버 오디오 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916/clips/26 

-팟빵 https://www.podbbang.com/channels/8243/episodes/24336474?ucode=L-xALTWWTB


작가의 이전글 <미나리> 살아있음의 쓸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