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치에 속하는 편인데 어렸을 적부터 이상하게 춤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은 공부하는 동아리에 들어갈 때 치어리더 동아리에 들어가서 공연에 참여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따금씩 원데이 클래스나 문화센터에서 방송댄스를 배웠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1년 이상을 하지 못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던 내가 1년 이상 꾸준히 춤을 춘 유일한 취미가 생겼다. 장르는 벨리댄스. 30대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본 벨리댄스 영상이 그 시작이었다. 미소는 아름다우면서도 두 다리의 떨림은 현란하고 두 손짓은 우아했다. 당시 지금 아니면 배우기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학원을 찾았고 그렇게 벨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찰랑찰랑. 수업 첫 시간에 두르고 싶었던 힙스카프를 매고 왼쪽, 오른쪽 힙을 튕기며 범프 동작을 하는 거울 속의 내가 썩 마음에 들었다.
취미가 무엇이에요?
벨리댄스예요.
벨리댄스를 배운다고 하면 어떻게 배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항상 뒤따라온다. 그들이 생각하는 춤이 아니어서 신선하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시작은 화장과 의상의 화려함 속에 예쁘게 표현되는 이미지가 인상적이어서였다.
하지만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자기 몸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크게 얼굴, 상체, 하체를 각각 컨트롤해야 한다. 상체에서도 가슴, 윗배, 아랫배를 세분화해서 컨트롤해야 한다. 내가 나의 몸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강약을 조절해야 몸에서 비로소 아름다움이 묻어 나온다.
처음에는 음악을 따라가기도 바쁜데 미세한 손끝 모양과 정교한 힙써클을 함께 만들라고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거 같았다. 꼭 상체와 하체가 각각 다른 사람처럼 움직였다.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나니 어느덧 그렇게 저마다 따로따로 놀던 몸은 어느새 조금씩 조화를 이루었다.(다만, 원래 몸치여서 완벽한 조화는 기대할 수 없다.)
사선으로 어떻게 웨이브를 타야 내 몸이 예쁘게 보이는지, 마야 동작(힙을 양 옆으로 각각 굴리는 동작)에서 상체를 중심에 두고 하체를 옆으로 빼는 정도에 따라 어떤 느낌이 나는지를 알아갔다. 춤을 추는 시간만큼은 내가 나를 정면으로 지켜보는 시간이자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유일한 시간이 되었다.
사실 지난 7월부터 몸이 아프고 류마티스 진단을 받고 그 이후까지 4개월은 벨리댄스를 나가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도 증상이 있을 때는 관절에 무리가 가는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류마티스 질환을 지닌 사람에게 댄스를 그렇게 좋은 운동이 아니다. 댄스보다는 산책과 같은 가벼운 유산소, 관절에 무리가 덜한 수영을 보통 권한다. 벨리댄스 배우는 걸 늦추고 수영을 배워볼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물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벨리댄스는 아직 운동으로 해도 되지 않는지, 질문 형태였으나 거의 조르다시피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듯 시간을 두고, 지금 증상과 단계에서는 적당히 추는 선에서 해도 괜찮다고 마지못해 이야기하듯 답했다. 다만, 조금이라도 지금과 다른 증상이나 통증이 있으면 바로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고민 끝에 3개월 만에 다시 벨리댄스를 시작했을 때 막상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유일한 취미를 다시 시작한다는 기쁨보다 예전처럼 할 수 있는 동작과 손목의 디테일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슬픔이 더 컸다. 당시 진단을 받고 우울감이 있었던 터라 '괜히 다시 한 건가' 하는 마음도 내심 들었다.
다시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요즘 배우는 탱고 풍의 음악이 유독 좋아서인지 다시금 어느 정도 동작을 따라갈 수 있어서인지 일주일에 2번 오후 7시 반, 벨리댄스를 추는 시간이 즐겁다.
이제는 더 오래 추고 싶어서, 유일한 취미를 질병으로 잃기 싫어서 스스로 몸을 관리하고 있다. 좋아하는 아이스 바닐라라떼도 거의 마시지 않고 빵도 줄이고 있다. 대신 각종 야채와 단백질 중심으로 먹고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식단을 하는 것이 아닌 몸속 염증을 줄이기 위해 식단을 한다. 아니, 오래 즐겁게 취미를 즐기기 위해 식단을 한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조조강직이 되는 걸 줄이기 위해 전신 스트레칭을 꼭 한다. 춤을 추는 시간에 몸을 컨트롤하는 연습을 하고, 춤을 추지 않는 시간에도 이어 몸을 돌보고 있다. 유일한 취미의 힘은 이렇게 내 정신과 몸을 긍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지금처럼 증상과 통증이 미약하고, 약만 잘 먹으면 크나큰 변화 없이 건강한 하루의 나날이 된다면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가 있다. 언젠가는 아마추어 벨리댄스 대회에 나가보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있으면 내가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더 잘 보살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