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이 바로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은 아니지만, 그 일상이 전과는 결코 같을 수는 없다. 늘 평범하게 했던 모든 일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게 되는 순간들로 이어졌다. 아직 찌릿한 왼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오른손을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부터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 침대에 누운 채로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죔죔을 한다. 요즘 조카에게 죔죔을 가르치고 있는데, 죔죔은 약 9개월 아기가 소근육과 모방놀이를 행하는 발달과정의 하나이다.
나에게 죔죔은 아침마다 관절이 뻣뻣해지는 조조강직 상태를 확인하는 행위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죔죔을 하려 하면 왼손은 움직일 수 없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면 퉁퉁 부은 손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오른손은 30분 이내에 그 붓기가 가시며 자연스럽게 주먹이 쥐어진다. 하지만 왼손은 점심이 지난 오후가 돼서야 주먹을 쥐어 죔죔을 할 수 있다.
눈을 뜨자마자 왼손은 주먹을 쥘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며 이내 마음은 다시 침대 속으로 푹 꺼진다. 조조강직이 더 심해질까 봐 혹시나 하는 걱정에 밤에 잘 때부터 주먹을 쥐고 잔 적도 더러 있다.
죔죔,
한 번 오므리며 '잠에서 서서히 깨 보자'
두 번째 오므리며 '나는 지난밤 푹 잔 것일까'
세 번째 오므리며 '잠을 많이 못자서 인지 오른손도 조금 뻣뻣하네'
네 번째 오므리며 '아직 아침에도 왼손은 주먹이 안되네'
다섯 번째 오므리며 '오른손은 서서히 깨는 거 같아'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두 손을 오므렸다 폈다 반복하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아니 혼잣말과 생각의 그 어느쯤에 있는 말들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잘 잤냐고, 괜찮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눈 뜨면 '아침이네. 일어나기 싫다' 또는 '헉 늦었다. 빨리 출근해야지' 같은 생각만 할 뿐, 어제 푹 잤는지, 지금 컨디션은 괜찮은지 물을 틈이 없었다. 아니 물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이런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다가도 '남들도 다 그렇게 아침을 맞지 않는가', '바쁜 일상 속 다 그렇지 않은가', '잘 일어났으면 됐지 뭐' 이렇게 결론을 냈다.
그런 내가 언젠부터인가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차츰 아침에 하는 죔죔은 단순히 조조강직을 확인하는 행위를 넘어 오늘은 나의 몸이 어떤지 안부를 묻는 행위로 바뀌었다. 옛말처럼 모든 소중함은 잃은 뒤에야 더 빛이 나나보다. 잃어봐야 그 진가를 깨닫는 것은 진리인가 보다. 자가면역질환으로 면역체계가 다소 고장 난 후에야 몸을 관찰하고 몸에게 묻는다. 오늘은 괜찮은지.
이렇게 몇 달이 지나고 늘 어느 아침처럼 죔죔을 하는데, 생각이 강직된 왼손보다 점점 '그래도 오른손이 아닌 게 다행이다'로 이동하고 있었다. 왼손이 지금 아프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매일 아침 잼잼이 가능한 자유로운 오른손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른손잡이인데 오른손이 아팠다면 밥 먹는 것도, 옷 입는 것도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프기 시작할 당시 준비 중이었던 시험을 포기해야 했을 수도 있다. 오른손으로 인해 할 수 없는 것이 더 늘었을 테고 그 좌절감의 깊이는 더 깊었을 것이다.
죔죔, 어느덧 마지막 n번째 오므리며
'왼손이 아파서 생활이 조금 불편할 뿐 달라지는 것은 없는 거 같아' 나지막이 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