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자가 되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퇴행성 관절염과는 다르다. 몸의 노화 과정에서 연골의 노화로 염증이 생겨 발생하는 관절염과 달리 면역세포에 의해 염증이 발생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해서 염증을 발생시키고 면역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자가면역질환으로 면역세포들이 몸의 어느 부위를 공격하느냐에 따라 증상과 질병이 나타난다. 내가 품고 있는 면역체계가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닌 반대로 나를 공격한다. 이 얼마나 괴상한 병이란 말인가.
자가면역질환은 아직 정확한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이라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실 뿐이었다. 혈액에서 류마티스 인자를 가지고 있다 해도 평생 류마티스 증상이나 판정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평소에 괜찮다가도 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후에 발병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역시나 현대인의 모든 질병의 근본 원인인 스트레스가 빠지면 섭섭하지 싶었다.
명확한 치료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심하면 스테로이드제를 처방하고, 통증 완화와 장기적 치료 시 비스테로이드제와 그밖에 증상에 따라 처방이 각기 다르다. 나의 경우 심각한 통증은 잡은 상태고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비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았다.
아직 완전 초기니까 고혈압과 고지혈증처럼 꾸준히 관리하면 큰 변화는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제때 몸을 관리하지 않으면 관절의 변형이나 다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어마무시한 말을 덧붙여주셨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딱 할 말만 하시는 선생님이신데 이때만큼은 굳이 바라지 않은 친절을 괜히 베푸신다 생각했다.
3개월 후 재검사를 위한 예약을 하고 3개월치 약을 한 봉지 가득 차게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확실히 하기 위해 류마티스 내과를 찾아갔지만, 속으로는 '설마...' 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마음 한켠에 손목터널 증후군이나 손목 염증이 남들보다 유독 심해서 그런 거라고 바라고 바랬나 보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병이라니. 어쩜 내 성격과도 같은 질병을 만난 것인가 씁쓸한 웃음이 일었다. 나는 강박과 불안이 일반인에 비해 높은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상황이 계획대로 혹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불안과 함께 스트레스 감도가 다소 높다. 그리고 결과가 좋지 못할 때 스스로에 대한 자책은 물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질타를 가할 때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나에게 너그럽지 못했다. 그래서 면역체계도 나에게 너그럽지 못했나 보다. 몸도 나를 외면했나 보다.
진단을 받은 당시, 죽을듯한 통증은 없어진 상태고 미세한 통증과 약한 증상만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내 불안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잘 관리하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보다 염증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이 더 가까웠다. 병도 병인데 급격하게 무너지는 내 마음부터 다스리는 것이 시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