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몸이 혼내고 있다.
어느 날, 이유도 알 수 없이 왼손이 아팠다. 지난 5월부터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연초보다 무리해서 일과 공부를 한 탓에 염증이 올라왔구나 싶어서 정형외과에서 염증주사를 맞고 처방을 받았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어느덧 몸의 염증은 뗄 수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행사를 무사히 마친 날, 기관장에게 보고를 완료한 날 등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일을 완벽히 끝낸 그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급성편도염이나 위염이 찾아왔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달고 사는 '염' 하나는 있으니까 증상이 발현할 때 적당히 다스리고 넘어갔다.
뭐든 적당히 하면 문제가 된다. 재작년부터 잠을 좀 못 자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한 두 차례 손가락 또는 발가락 한쪽이 부었다. 그때마다 정형외과나 통증의학과를 가며 주사와 약처방으로 하루 다스리면 잘 넘어갔다. 통증과 붓기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었음에도 나는 눈치를 못 채고 하루 잘 다스리는 거에 의미를 가졌다. 어느덧 몸은 주인이 말을 안 듣는 게 못마땅했는지 크게 반응했다.
보통날 같으면 하루 주사 맞고 3일 약 먹으면 붓기와 통증이 사라졌는데, 3주째 매주 염증주사를 맞아도 스테로이드 약까지 먹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치료받은 당일에만 반짝 효과를 보일 뿐 그다음 날부터 붓기와 통증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자 어느덧 나는 주먹을 쥐지도 펴지도, 물건을 들지도 못할 정도로 악화됐다. 그러다 몸이 제발 알아차리라고 아우성치는 일이 벌어졌다.
원자력 병원을 예약하고 검사받기 2일 전에 갑자기 손바닥부터 왼쪽 팔 전체, 알 수 없는 끊어질 듯한 통증으로 새벽 2시에 깨서는 잠을 못 잤다. 울면서 손을 전처럼 온전하게 못써도 되니 이 통증만은 가시게 해달라고 듣는 이 없는 허공에 빌고 또 빌었다. 처방받은 약을 3시간 간격으로 씹어먹으며 겨우 아침에 잠들었다. 살면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손가락 또는 발가락 붓는 증상이 5회 이상되면 류마티스 내과를 가보세요"
처음 엄지발가락이 붓는 증상이 나타났을 때 동네 정형외과에서 별다른 증상을 찾지 못해 통증의학과를 방문했었다. 그때 선생님이 놓아준 염증주사는 바로 효과를 보였다. 그 뒤로 방문하지 않다가 2년이 지난 뒤 이번에는 검지 손가락이 부어서 다시 방문했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위와 같이 말씀하셨다. 발가락이나 손가락이 붓는 일이 흔한 거 같으면서도 별도의 충격이 없는 한 주기적으로 붓지는 않는다고. 당시에는 바빴던 터라 선생님의 말씀에 "네" 간단히 대답했을 뿐, 염증주사를 맞고 나으니 바로 류마티스 내과를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때 몸에 대해 외면한 책임을 한꺼번에 지는 것일까.
원자력 병원의 담당의사를 만날 때까지 손의 통증은 다행히 줄어들었지만 손등이 손바닥 장난감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피검사와 MRI 등을 검사해 본 결과 내 증상의 이름은 혈청 음성 류마티스. 병명이 아닌 증상이라고 말한 이유는 보통 검사 결과에 류마티스 인자가 양성으로 나타나서 판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나의 경우에는 인자가 없지만 여러 증상과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보고 최종 판단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30대 후반인데...
내가 류마티스라니"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