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라
여전히 전화와 카카오톡 채널로 비용만 묻는 이들의 상담을 대응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안녕하세요. 저희는 000 예술 관련 비영리단체로 지자체 보조 지원사업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가능한지 여부와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카카오톡 채널로 문의가 왔다. '또 비용만 묻는구나' 생각되었지만 문자로 담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함으로 답을 했다.
미노와 고스케의 <미치지 않고서>에서 '스피드는 열기를 빚고 양은 질을 만들어낸다.… 압도적인 양을 소화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가 있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문자 안내 스킬이 쌓였는지, 몇 번의 카톡을 더 주고받고 의뢰인은 유선으로 상담받기를 원했다.
오후에 의뢰인의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지자체 보조 지원사업에 참여가 가능한지 공고문의 대상기준을 들어 설명하고, 어떤 절차를 통해 진행되는지와 비용에 대해 다시 한번 안내했다. 그렇게 통화 후 마지막에 의뢰인은 진행하고 싶은데 대면상담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의뢰인과의 통화에서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다음날 오후로 대면상담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의뢰인이 '진행하고 싶다', '대면상담 하고 싶다'라고 말한 순간부터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응? 이게 맞아? 계속 카카오톡 채널로만 상담하다 바로 유선, 그리고 대면상담까지 한다고?
아니, 사업을 나와 진행하고 싶다고? 오 마이 갓'
개업 전에 기업인증에서 두각을 내고 있던 선배를 찾아간 적이 있다. 선배에게 이런저런 행정사 업무에 관한 노하우를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대면 상담할 때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초짜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 선배의 노하우를 배웠을 뿐, 습득까지는 가지 못했다. 첫 대면 상담에서 가벼운 아이스브레이킹 후 앉자마자 급하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느꼈기 때문이다.
상담 전 날 의뢰인과의 통화 후에, 다시 한번 의뢰인이 지원하고자 하는 해당 지자체 보조사업의 내용과 기준을 검토했다. 그리고는 작년, 재작년에 해당 보조사업에 선정된 비영리 단체와 법인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원 대상에 해당이 되고 최근 3개년 실적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보조사업에 지원 신청을 하더라도 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의뢰인의 단체 설립일이 2024년 12월이어서 설립기간이 매우 짧은 점과 지난 실적 중 2022년 실적은 해당 지자체 보조사업의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였다.
보조사업 선정이 안될 확률이 다소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바로 지원하기보다는 1년 동안 예술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내년 초에 각종 지자체 지원사업을 신청하는 방향으로 상담자료를 만들었다. 당장의 수임계약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담자료였다.
행정사 업계에서는 시간이 역량이자 매우 큰 자산이기 때문에 상담시간 30분당, 1시간당 소정의 상담비용을 받고 진행한다. 하지만 나는 대면 상담이 처음이었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상담비용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상담이 수임계약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의뢰인도 함께 진행하고 싶다고 전화로 의사를 전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면 바로 계약까지 첫 수임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향과는 다르게 상담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의뢰인과 마주 앉아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무엇이 급했는지 전날 판단하고 생각한 방향과 그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쭉 설명했다. 의뢰인은 아무 말없이 '이번 보조사업 지원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올해 준비해서 내년 초에 지원하자'라고 말하는 나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는 나의 말이 끝나자 의뢰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사업으로 알게 된 지인이 이 사업을 추천했기 때문에 지원을 안 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저희 단체에는 이 업무를 맡아서 할 인력이 부족해서 대행을 문의드렸습니다. 앞으로 지자체 보조금 지원사업을 중점적으로 참여하려는 계획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더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원하려고 합니다."
댕.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개업 전에 만났던 선배의 조언이 떠올랐다. 많은 말을 하면 초짜라는 것. 첫 대면 상담에서 '나는 초짜입니다'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 없이 부끄러웠다. 내 생각과 제안을 말하기 전에 의뢰인의 현 상황을 먼저 듣고 후에 자료를 전달했다면 의뢰인의 상황을 다방면으로 고민한 행정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자료를 들어 '가능성은 이러하지만 의뢰인의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진행해 보겠다'로 마무리 지으며 자연스럽게 계약을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대면상담은 행정사로서 업무의 자신감도, 의뢰인의 상황에서 따라 대응하는 업무 역량도 보여주지 못했다. 상담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한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의뢰인의 입장에서 진짜 니즈를 파악하는 것을 놓쳤다.
'내가 끝까지 해결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의뢰인에 대한 본질을 놓칠 때가 있다. 의뢰인이 원하는 건 '내' 해결책이 아니라 '본인을 위한' 해결책인데 말이다. 또한 의뢰인도 스스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많은데, 의뢰인의 진짜 욕구를 알아내서 그걸 만족시켜 주는 것이 행정사의 본질이다. 의뢰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의뢰인이 길을 찾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짜 전문가의 역할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계약은 물 건너갔냐고?
이 글은 내 첫 대면상담 대상자이자 첫 수임을 한 의뢰인에 대한 기록이다.(어떻게 수임이 되었고, 의뢰인이 나와 계약을 했던 이유는 다음 편에)
처음은 언제나 앞으로의 기준이 된다. 첫 대면 상담 이후 '왜 그렇게 말했을까?',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나?' 그 상황을 계속 복기했다. 한없이 부족하고 부족했던 대면상담 속 내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려 노력했다. 결국에는 내가 해결해야 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장면과도 같았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진짜 필요한 본질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맞게 업무방향을 제안하고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 이제는 상담이 있을 때마다 이 점을 리마인드 하며 의뢰인을 만나고 있다.